10·15대책 여파에 전세수급지수 48개월 만에 최고
전세 매물 부족·전셋값 42주 상승…신용대출도 급증
시중 5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이 3개월 연속 줄어드는 가운데 전세 규제와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확대의 여파로 전세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세대출 규제로 세입자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적용 확대로 신규 전세 매물 공급까지 위축되면서 '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내년 봄 이사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4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11월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123조2348억원으로 전월 대비 2849억원 감소했다. 전세자금대출은 지난 9월(-344억원), 10월(-1718억원)에 이어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 전세자금대출이 가장 많이 늘었던 2월(+8411억원)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셈이다. 2월은 통상 신학기와 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대출이 증가하는 성수기다.
11월 전세자금대출이 줄어든 가장 큰 배경으로는 10·15 대책 이후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된 점이 꼽힌다. 그동안 규제에서 제외됐던 1주택자의 전세대출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대출 한도가 축소됐고,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를 겨냥한 규제로 일부 수요가 위축된 영향도 함께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세대출을 활용해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던 수요층이 줄어들면서 전세대출 잔액이 감소하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세 매물 부족에는 토허제 확대가 공급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10·15 대책에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허구역으로 묶었다. 특히 서울 전역이 토허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해당 지역에서 새로 주택을 매수하는 경우 일정 기간 실거주 의무가 부여돼 취득 후 최소 2년간 전세를 놓기 어렵게 됐다. 이로 인해 신규 매입 주택 중 전세로 공급될 수 있었던 물량이 감소하면서 전세 시장의 공급 여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대출 규제와 공급 제한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전세 수급 불균형은 더 심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11월 넷째 주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04.4로 나타났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다. 지난 10월 전세수급지수는 105.0으로 2021년 11월(108.3) 이후 약 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세 매물 부족은 전세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11월 넷째 주 기준 전주 대비 0.14% 오르며 42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세대출 규제로 기존 전세 수요 일부가 월세나 보증부월세로 이동하고 있음에도, 공급이 더 빠르게 줄어들면서 가격에 상승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대출이 막히자 신용대출로 우회하는 수요도 나타나고 있다. 11월 한 달간 신용대출 잔액은 8316억원 증가해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액(6396억원)을 웃돌았다. 최근 두 달간 신용대출 잔액 증가액은 1조7567억원에 이른다. 전세보증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전세대출 한도가 줄어든 차주들이 부족분을 신용대출로 메우는 움직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0·15 대책으로 갭투자 목적의 매입에는 대출이 사실상 차단되고 이후 전세퇴거자금 대출을 일부 허용해 퇴로를 열어줬지만 한도가 1억원으로 제한되면서 세입자 입장에선 체감상 전세대출이 막힌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며 "부족한 전세자금을 신용대출 등으로 조달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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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10·15 대책 이후 임대차 시장의 월세화와 전세 물건 감소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전세대출 제한으로 갭투자 악용 사례는 줄어들겠지만, 토허제 확대에 따른 신규 전세 공급 위축과 맞물려 전셋값 상승 압력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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