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는 흔히 바이러스와 싸워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열된 엔진처럼 폭주한 면역세포는 바이러스와 정상 세포를 구분 없이 파괴할 수 있다. 국내 연구팀이 면역세포의 활성화 과정을 제어하는 핵심 원리를 규명, 면역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실마리를 찾아 제시했다.
KAIST는 의과학대학원 신의철·박수형 교수 연구팀이 충남대 의대 은혁수 교수와 공동연구로 '킬러 T세포(CD8+ T세포)'의 비특이적 활성화 원인을 규명, 이를 조절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고 5일 밝혔다.
통상 킬러 T세포는 감염된 세포만 선별적으로 제거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억제한다. 하지만 반응이 과도해지면 감염되지 않은 정상 세포까지 공격해 염증과 조직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과잉 면역 반응'은 중증 바이러스 질환이나 자가 면역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동연구팀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사이토카인(cytokine)으로 비특이적 활성화된 킬러 T세포가 아무 세포나 무작위로 공격한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이를 '비특이적 T세포 활성화'로 명명한 바 있다. 후속 연구로 진행된 이번 연구는 킬러 T세포가 비특이적으로 활성화하는 현상의 분자적 기전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연구 과정에서 공동연구팀은 여러 사이토카인 중 '인터류킨-15(IL-15)'라는 물질에 주목했다. 실험 결과 IL-15는 킬러 T세포를 비정상적으로 흥분시켜 감염되지 않은 세포까지 공격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바이러스 감염 등 항원 자극이 있을 때는 이러한 과잉 반응을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억제 작용은 세포 안의 칼슘 농도가 변할 때 칼시뉴린(calcineurin)이라는 단백질을 작동시키고 이 신호가 NFAT라는 조절 단백질을 움직여 킬러 T세포의 행동을 제어한다는 사실도 새롭게 규명됐다. IL-15 신호에 의해 활성화되는 세포 내부의 칼시뉴린?NFAT 경로가 일종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공동연구팀은 일부 면역 억제제가 칼시뉴린 경로를 차단해 면역을 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특정 상황에서 IL-15로 킬러 T세포의 과도한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이는 면역 억제제의 작용이 모두 동일하지 않으며, 환자의 면역 반응 양상에 따라 약제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유전자 발현 분석으로 IL-15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 킬러 T세포에서만 증가하는 유전자 세트(마커)를 찾아냈으며, 이 마커가 급성 A형 간염 환자의 킬러 T세포에서도 뚜렷하게 증가함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해당 마커가 질병 진단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연구는 중증 바이러스 감염, 만성 염증성 질환, 자가면역질환, 장기이식 거부반응 등 다양한 면역 질환의 발병 원인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 IL-15 신호를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면역조절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가능성을 확인케 한다.
신 교수는 "우리 몸의 킬러 T세포는 단순한 방어자가 아니라 염증 환경에 따라 '비특이적 공격자'로 변할 수 있다"며 "이러한 비정상적인 활성화를 정밀하게 조절하면, 난치성 면역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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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연구는 의과학대학원 이호영 박사와 김소영 박사과정 학생이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해 수행했다. 연구 결과(논문)는 최근 국제학술지 '면역학(Immunity)'에 게재됐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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