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의무를 규정한 개정 상법은 새로운 의무를 만들었다기보다 이전부터 있던 의무를 법률로 확인한 의미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개정 상법으로 이사에 대한 배임죄 범위가 넓어지는 등 시장이 혼란에 빠진다는 주장은 오해라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금융법센터는 7월 29일 서울대 로스쿨 백주년기념관에서 '이사 충실의무 도입에 따른 실무상 쟁점'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발제자 없이 토론자들이 개정 상법의 주요 쟁점을 두고 자유롭게 논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주영(61·사법연수원 18기)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주주 충실의무 규정이 '창설적'이냐, '확인적'이냐 두 가지 중 저는 확인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 전에도 주주의 이익은 당연히 보호돼야 했지만 이를 미처 인식하지 않았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개정 상법이 회사 재정이 무너질 정도로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주주 자본주의'를 천명했다는 우려는 그래서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히려 ESG 기조가 앞으로 더 강화된다고 짚었다.
그는 "지금껏 법원이 회사 법인을 실체가 있는 인격으로 거의 절대시해 왔다"며 "이 때문에 법인이라는 베일 뒤에 가려진 실질적인 의사결정자인 이사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정당화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이 누군가의 승리라고 본다면 주주의 승리가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가 회사 법인을 상대로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평(48·33기)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도 "기업 이사회에 개정 상법을 설명할 때 ESG 경영은 법 위반이 되냐고 실제로 3명 이상 질문했었다"며 "근거를 없는 불신이나 폄하, 두려움이 있어서 그 수준에 놀랐다"고 말했다. 정준혁(48·33기) 서울대 로스쿨 교수도 "주주 충실의무가 등장했어도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는 살아 있어 이전과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배임죄 범위 확대도 오해에 가깝다. 배임죄는 사무 위탁을 주고받은 관계에서만 성립되는데 주주 충실의무가 규정된다고 해서 주주와 이사 사이에 위탁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천준범(48·35기) 와이즈포레스트 대표는 "이사는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면 될 뿐, 이사의 직무가 주주의 재산을 관리하는 쪽으로 바뀐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사는 회사 법인으로부터 경영업무만 위탁받는다.
천경훈(54·35기) 서울대 로스쿨 교수도 "교수가 학생을 위해, 기사가 승객을 위해 일하지만 그렇다고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 것과 같다"며 "죄형법정주의 관점에서도 배임죄는 상법 개정으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회사와 이사, 주주, 그밖의 이해관계자들 사이 권리의무 관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지만, 이해관계자들이 이사들에게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커졌다는 데 동의했다. 대기업집단이 계열사 사이 내부거래를 하고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등 터널링(tunneling), 즉 사익 편취는 이전에도 회사에 대한 배임이었지만 상법 개정으로 이사들의 책임이 더 무거워진 의미는 있다는 것이다.
정준혁 교수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이전에도 문제였지만 단지 기업들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배임죄가 되는지 여부를 떠나 이사들의 주의 의무는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사들이 무슨 의사결정을 해도 주주에 어떤 영향을 줄지 검토하는 과정을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며 "이것이 개정 상법의 가장 큰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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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동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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