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이어졌던 올 상반기의 암울한 분위기가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의 경고가 나왔다. 부정적인 전망은 석유화학, 건설, 저축은행 등의 업종에 집중됐다.
3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국내 기업들의 등급 전망(워치리스트 포함) 분포에서 향후 하향 조정이 예상되는 '부정적' 전망은 37건에 달했다. 등급 상향 조정을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 전망(23건)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앞서 상반기에도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 사례는 28건으로 상향(22건)보다 많았었다.
한국신용평가가 공개한 등급 전망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확인된다. 6월 말 기준으로 부정적 전망 및 워치리스트 하향 검토 사례가 23건인 반면 긍정적 전망은 14건에 그쳤다. 정승재 한신평 연구위원은 "부정적 방향의 우세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다수의 등급 하향(상반기 32건)으로 작년 말에 비해 부정적 방향이 감소했으나 금융부문에서는 심화했다"고 짚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S&P 글로벌 레이팅스 역시 전날 간담회에서 한국 주요 기업들의 신용등급 전망이 전년 대비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S&P가 평가하는 국내 기업 39개사의 등급 전망에서 '부정적' 비율은 15%로 전년(8%) 대비 두 배 가까이 확대됐다. 반면 1년 전 5%를 차지했던 '긍정적' 전망은 올해 0%였다. 이는 주요 기업 중 신용등급이 상향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없다는 뜻이다.
신평사들의 이러한 우려는 상당 부분 비우호적인 거시환경에 기인한다. 이영규 나신평 수석연구원은 "(하반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인상에 따른 영향이 가시화될 전망"이라며 "중국 내수 위축에 따른 글로벌 공급과잉도 지속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부 기업들을 중심으로 자구 노력을 통한 재무안정성 회복 시도가 예상되지만 이 또한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진단이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미국발 관세, 전기차 전환 수요 둔화, 중국발 공급과잉, 인공지능(AI)의 빠른 성장 등 4대 구조적 변화에 직면했다는 경고도 나왔다. 박준홍 S&P 글로벌 레이팅스 상무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국내 기업들의 신용 전망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향후 1~2년간 많은 섹터가 수익성 압박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종별로는 상반기 직격탄을 맞았던 석유화학, 이차전지 등을 중심으로 하반기에도 등급 하방 압력이 지속될 전망이다. 이미 국내 신평사들은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주요 석유화학·이차전지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줄하향한 상태다. 건설업 역시 비우호적인 업황 속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차환 및 현실화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됐다.
나신평에 따르면 6월 말 기준으로 석유화학 기업 7개사, 건설 4개사, 이차전지 3개사가 현재 부정적 전망 리스트에 올라있다. 한신평의 등급 전망에서도 석유화학(3건), 건설(2건), 저축은행(3건), 부동산신탁(2건) 등이 확인됐다. 이들은 부진한 업황 속에서 현 재무구조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수개월 내 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후보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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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조선, 전력기기, 방위산업은 대외여건이 우호적일 것으로 전망됐다. 견조한 방산무기 수요가 예상되는 방산의 경우 나신평과 한신평으로부터 각각 5개사, 4개사가 긍정적 및 상향 검토 전망을 받았다. 한국기업평가 역시 업종별 하반기 전망 트리맵에서 조선, 방산업을 긍정적으로 본 반면 건설, 석유화학, 이차전지업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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