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경사지고 깊게 팬 계곡부
돌 아닌 기와로 쌓은 축대 처음 발견
"백제 왕궁의 높은 위계 공간 확인"
부여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고 넓은 평탄 대지가 인공적으로 조성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부소산성의 조선 시대 군창지(軍倉址·군대에서 사용할 식량을 비축했던 창고 터) 동편을 발굴 조사해 이 땅이 본래 경사지고 깊게 팬 계곡부였음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평탄화에는 백제 한성기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에서 나타난 전통적인 대지조성 방식이 적용돼 있었다. 3~4m 깊이의 계곡부를 흙으로 메웠는데, 밀림 현상을 막으려고 둑(토제)을 먼저 만들었다.
세 개의 계단식 단으로 구성된 평탄 대지 위에는 굴립주 건물(掘立柱建物·땅속에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 만든 건물)지와 와적기단(瓦積基壇·기와를 쌓아 가장자리를 마감한 기단) 건물지, 저장시설 등이 마련돼 있었다. 눈에 띄는 특징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대지를 나누는 동서 방향 축대로, 기와를 약 0.6m 높이로 쌓아 만들었다. 연구소 측은 "국내에서 돌이 아닌 기와로 쌓은 축대가 확인되기는 처음"이라면서 "잔존길이가 26m인데 군창지 방향 서편에서 더 길게 발견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단에서는 백제 시대 굴립주 건물지와 와적기단 건물지, 저장시설,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두 번째 단에서는 와적기단 건물지 두 동이 발견됐다. 한 동의 길이는 동서가 약 14.6m, 남북이 11.5m였다. 원형 초석을 건물 바깥기둥에 쓰고 내부 건물에 네모형 초석을 사용했다. 초석들 사이에는 기와를 이용해 건물 고막이를 설치했다. 고막이 시설이란 하인방(기둥 아래를 가로로 연결하는 부재) 아래에 조성했던 마감 시설이다.
연구소 측은 "성토 대지, 와적기단 건물지 등으로 부소산성 일원이 단순한 방어 공간이 아닌 백제 왕궁의 높은 위계 공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백제 사비기의 왕궁과 도시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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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은 백제 사비기 왕궁터로 알려진 관북리 유적 북편에 있는 성이다. 국가유산청은 1981년부터 올해까지 열일곱 차례 발굴 조사해 백제의 성벽과 구조를 파악하고, 건물지와 우물지 등의 시설이 있었음을 파악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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