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타블로이드지 뉴욕포스트에 최근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걸스카우트 쿠키의 뉴욕시 판매량이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내용이다. 걸스카우트 단원들은 해마다 1월부터 4월까지 지역 사회를 돌며 직접 쿠키를 판다. 하지만 올해 판매량은 110만상자로 2014년(100만상자) 이후 가장 적었다. 지난해(122만상자)보다도 판매가 10% 줄었다. 쿠키 한 상자 가격이 1년 사이 5달러에서 7달러로 급등하자, 소비자들은 선뜻 지갑을 열지 못했다.
친(親)트럼프 성향의 이 매체는 쿠키 판매가 줄어든 원인 중 하나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지목했다. 쿠키 가격이 뛰기도 했지만, 관세로 인한 추가 물가 상승과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에 소비자들이 전반적으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봤다. 관세발(發) 불황의 그림자가 아이들이 손수 파는 쿠키 상자에도 드리워진 셈이다.
미국인들의 소비 심리 위축은 외식업계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맥도날드의 올해 1분기 미국 내 동일 매장 매출은 1년 전보다 3.6% 줄었다. 팬데믹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지난해 소비자 부담을 낮춘 5달러짜리 햄버거 세트 메뉴까지 내놨지만, 매출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방문이 10%가량 줄었다. 치폴레, 피자헛, 스타벅스 등도 예외 없이 매출이 감소했다. 미국인들은 이제 햄버거, 피자, 커피처럼 일상적인 소비조차 줄이는 모습이다.
이처럼 전반적인 소비 위축 이면에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모든 나라에 두 자릿수 관세를 부과했고, 중국에는 무려 145%라는 초고율 관세를 매겼다. 4월2일 상호관세가 공식화된 이후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고 소비 심리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특히 대형 할인마트 등 저가 중국산 제품 수입에 의존하던 유통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으면서, 서민층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가장 역설적인 점은 관세 정책의 최대 피해자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란 데 있다.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노동자들은 관세를 통해 미국에 공장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란 트럼프의 약속을 믿고 표를 던졌다. 하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인상은 미국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를 초래할 공산이 크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가처분 소득은 줄어들고 생활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전 행정부에서 재무부 부차관보를 지낸 킴벌리 클라우징 UCLA 로스쿨 교수는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관세의 역진성을 지적했다. 그는 "관세는 소득이 낮은 계층에 세 부담을 더 많이 지운다"며 "트럼프는 그가 돕겠다고 약속한 노동자들에게 더 큰 경제적 불안을 안기고 있다"고 직격했다. 미국인들은 그동안 자유무역으로 저렴한 수입품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트럼프가 열어젖힌 보호무역 시대엔 같은 물건도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관세가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아닌, 서민을 옥죄는 자충수가 된 셈이다.
이제 미국 내 여론도 돌아서고 있다. '경제 대통령'을 자처했던 트럼프는 취임 후 짧은 허니문을 끝내고 최근 지지율 하락세에 직면했다. 워싱턴포스트(WP)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취임 100일 직전 지지율은 39%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관세 폭격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둔화) 우려 속에 지난달 주식, 달러, 국채 등 3대 자산이 동반 급락했고 미국 내 불만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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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로도 중국이 관세 압박에 전혀 굴복하지 않고 있고, 캐나다·유럽연합(EU)도 협상과 동시에 대미 보복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안으로는 소비자와 기업의 반발이 거세다. 트럼프의 관세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졌지만, 미국 경제 역시 그 역풍을 피하긴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추진력과 설득력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관세 부과와 유예를 반복하는 오락가락 관세 정책 속에서, 어쩌면 지금 가장 다급한 쪽은 트럼프 자신일지도 모른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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