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
韓·伊, 기초·응용과학 상호보완 관계
"STEM 더 큰 진전 위해 성별 균형 필요"
"한국과 이탈리아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에서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협력해 무한한 가능성을 함께 실현할 수 있다. 아울러 STEM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확대된다면 과학기술과 첨단산업 혁신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에밀리아 가토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저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가토 대사는 2023년 9월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 부임하기까지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파리, 뉴욕 등을 거쳐 언론정보·경제·국제협력 업무 전반에서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은 36년 차 베테랑 외교관이다. 이날 가토 대사는 명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에밀리아입니다"라고 첫인사를 건네며 자신을 소개한 뒤 "오늘은 이탈리아 과학자들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의 중요성도 함께 되새길 수 있는 날"이라고 언급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은 이날 '일일 대사 체험(Ambassador for a Day)'이라는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양성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2022년 1회를 시작으로 올해 4회째를 맞이한 이 행사는 국내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여대생 한 명을 선발해 가토 대사와 하루 일정을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탈리아 과학의 날'을 맞아 STEM을 주제로 한 올해 행사에는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는 고민영씨가 일일 대사로 선발돼 양국 STEM 분야 주요 인사들과 회의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했다.
가토 대사는 "일일 대사 체험은 유엔(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5번째인 '성평등 달성 및 모든 여성과 여아의 권한 강화' 항목에 영감을 받아 시작된 프로젝트"라며 "올해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여성 과학자이자 신경 성장 인자 관련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리타 레비몬탈치니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과 같은 날짜에 행사를 진행하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학 뿌리 깊은 伊, 응용력의 韓…"이상적 파트너 관계"
신경생물학 분야에 기여한 리타 레비몬탈치니뿐만 아니라 원자력의 기초를 확립하고 이론·실험 물리학 모두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엔리코 페르미, 스핀 유리와 복잡계 물리 연구로 잘 알려진 조르조 파리시 등 노벨상 수상자를 여러 명 배출한 이탈리아는 기초과학 강국이다. 가토 대사는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과학과 예술을 융합한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탈리아의 기초과학에 기여한 대표적 인물"이라며 "이처럼 이탈리아는 오랜 시간 이론 중심의 순수 학문에 집중한 결과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는 대학들이 많다. 해당 분야를 공부하고자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이탈리아 유학은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토 대사는 이탈리아가 기초과학에서 뛰어난 연구 역량을 가졌기 때문에, 반대로 응용과학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과 "궁합이 맞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공학 등 응용과학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 전략은 전 세계가 알다시피 성공적이었다. 역사적으로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인적 자원 육성에 집중해 이뤄낸 결과"라며 "하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놓치는 게 있기 마련인데, 한국에서 기초과학 연구는 공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진행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만약 한국이 이제부터 이론 중심의 연구도 강화하려 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이상적인 파트너 관계에 있다"고 짚었다.
이어 "특히 이탈리아는 한국과 STEM 분야에서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 응용과학에 더 힘쓸 필요가 있는 이탈리아에는 좋은 기회"라며 "예를 들면 이탈리아는 한국으로부터 반도체 분야에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 생각한다.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훨씬 앞서 있다. 예전에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모든 것이 자동화돼 있던 모습을 보고 이탈리아가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으로 반도체를 언급했지만 항공우주, 자동차, 인공지능(AI) 등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STEM 여성 진출 늘어야…사회 전체 도움 필요
가토 대사는 STEM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를 더 적극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일일 대사 체험을 기획할 때 참고한 인물인 리타 레비몬탈치니가 '인류는 여성과 남성으로 구성돼 있으며, 양성 모두가 인류 전체를 대표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은 STEM 분야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참여가 균형이 있어야 함을 뜻한다"면서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STEM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 간 참여 불균형을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재를 잃는 것을 넘어 사회가 진일보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며 "이는 STEM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제 주위에 여성들이 학교나 직장에서 아주 뛰어난 성과를 내고도 가족과 관련된 책임 때문에 학업 또는 일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부담에 대해 사회 전체가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가토 대사는 여성 외교관이면서 동시에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했다. 그는 "다소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탓에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될 수 없나'하는 아픔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 잡고 있다"며 "세 명의 아이를 키웠다. 힘들고 지치는 때가 많았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제가 비교적 젊었을 때는 직장에서 자녀가 세 명 있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탈리아에서는 자녀를 두 명까지만 낳는 경우가 보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토 대사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한 진정한 변화는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에서 시작된다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남성이 의무로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면 여성과 남성이 비로소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대표가 30살쯤 된 남녀 두 명의 입사 면접을 봤다고 가정해보자. 이 대표는 '지원자 중 여성은 결혼했고 자녀가 한 명 있는데, 곧 둘째를 출산하거나 육아휴직을 할 수도 있으니 다른 지원자를 뽑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부여한다면, 이 같은 상황이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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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가정 내에서는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통해 아버지가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 육아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면서 책임감을 느낄 기회가 많아질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일과 삶을 조율하는 데 느끼는 부담을 덜 수 있는 환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형 기자 trus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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