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헌재가 일깨운 한덕수 대행의 길](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4111509583811515_1731632318.jpg)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구를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할 때부터 매듭은 꼬였다. 이완규 법제처장이 누구인가. 윤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동기 아닌가.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절 자기 사건 변호를 맡겼고, 장모 최은순씨 관련 사건 변호도 담당한 사람이 이 처장이다. 오죽하면 윤 전 대통령 일가의 '법률 호위무사'로 불렸겠는가.
그런 인물이 누구보다 공명정대해야 할 헌법재판관으로 지명되면서 국민은 다시 지난겨울의 악몽을 떠올렸다. 어떤 거대한 음모가 뒤에서 움직인 결과가 아니냐는 불안의 심리가 확산했다.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판을 뒤집으려는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선택이 헌법재판의 안정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기막힌 상황.
파면당한 대통령 가족의 법률 조력자를, 게다가 안가 회동을 통해 내란에 가담했다는 의혹까지 받는 피의자를 헌법재판관에 앉히면 헌재 신뢰가 흔들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헌법학자 다수가 월권이라고 지적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은 처음부터 무리수였다.
이제 한 달 보름 정도 지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뽑힌다는 것을 고려해도 그렇다. 대통령 몫의 재판관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이가 행사하는 게 헌법 취지에 부합한다. 헌재는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에 제동을 걸었다.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헌법재판관 지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헌재는 "헌법·법률이 정한 자격과 절차에 의해 임명된 재판관이 아닌 사람이 재판할 경우 헌법재판 신뢰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당연한 결정을 헌재가 내릴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국민에게는 스트레스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헌재 결정은) 사필귀정"이라면서 "(한 대행은) 국민께 사죄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 대행은 국민 앞에서 머리를 숙여야 한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어물쩍 넘어가는 것은 책임 있는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제 궁금한 것은 '한 대행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의문이다. 한 대행을 오래 지켜본 이들일수록 그의 무리수를 낯설게 받아들인다. 역대 정부에서 그를 중용한 것은 합리적인 사고로 일을 풀어가는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랬던 한 대행이 무리수를 던진 것은 정말로 대선에 관한 생각 때문인가. 파면당한 대통령이 한 대행을 정치 지렛대 삼아 훗날을 도모하려 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의 친윤(친윤석열)계 인사들이 한덕수 등판론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만약 한 대행이 대선에 나갈 생각을 실제로 품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에서 물러나 출사표를 던지는 게 정도다. 대선 도전을 둘러싼 얘기가 정치권의 낭설에 불과하다면 대선 관리자로서의 본분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공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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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대행이 불확실성을 키우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는 월권 논란으로 헌법 질서에 부담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를 위해 평생을 봉사한 공직 인생의 충심마저 의심받는 것은 한 대행 본인은 물론이고, 그를 따르던 후배 공직자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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