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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K-제조업 공동화' 트럼프 탓만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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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K-제조업 공동화' 트럼프 탓만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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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석에서 만난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조만간 예정된 미국 출장을 앞두고 고민을 토로했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각종 위성의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방산기업으로,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미 빅테크와 납품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의 고민은 미국 거래처의 현지공장 신설 요구였다.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도 공장을 지어달라"는 요구가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벤처 특성상 자금력과 인력수급 문제가 있어 여러 공장을 가동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제안보다는 압력에 가까워질 정도로 고객사의 압력이 세졌다. 자칫 대형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고민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공장을 지으려면 자금조달 방안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벤처기업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배경은 그게 아니었다. 새 행정부 출범 전부터 빅테크가 미국 내 생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고객사의 제안이 압력으로 바뀐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촉발한 계엄 사태였다. 아시아 정치경제 모범생인 한국에서 갑작스런 계엄 사태가 벌어지자 공급망 불안을 느낀 빅테크가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미국 내 생산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방산은 국가안보와 관련돼 있는 만큼 공급망 안정이 필수다. 하지만 정치 상황이 급변하는 한국을 안정적인 공급처로 볼 수 없다는 게 빅테크가 공장 이전을 요구하는 이유였다. 이 벤처기업 CEO는 "계엄이 우리 비즈니스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새 행정부까지 관세 으름장을 놓자 현지 공장 건설을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국내 통상전문가들의 가장 큰 우려는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쏟아내는 관세 폭탄을 피해 국내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국내 생산기반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미국에 향후 4년간 210억달러(한화 약 31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하자 이런 우려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방산 벤처기업이 미국행을 고심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내 제조업 공동화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 탓으로만 돌리긴 어렵게 됐다. 예상 밖의 계엄으로 민주주의 추락을 경험한 우리는 글로벌 공급망에서도 '불신'의 오명을 안게 됐다. 가뜩이나 상법 개정안, 강성 노동조합 등으로 기업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계엄까지 제조업 공동화를 부추기는 요소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국내 방산은 잇단 해외 수주로 주요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방산기업의 무기류 수출 규모는 40억5167만달러로 우리 돈 5조원으로 훌쩍 넘겼다. 특히 미국은 한국이 세 번째로 많은 무기를 판매한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주요 기업들이 잇달아 미국에 공장을 짓는 데 이어 방산까지 현지생산을 택하면 수출은 그만큼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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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미국에 진출한 한국 사업장은 총 2432개에 달했다. 대내외 변수로 그 숫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첨단 제조업을 자국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 기업들을 지키기는커녕 해외로 내모는 빌미를 제공한 점에서 계엄 사태는 여전히 뼈아프다.




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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