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12)
챗GPT에 현대차·기아 이미지 변화 물어보니
현대차·기아, 혁신 모빌리티 마케팅 차별화
현대차, 고성능·수소…기술 리더십 주도 이미지 강조
기아, 대중·실용적 모빌리티 브랜드로 전환
사명·로고 바꾼 기아…로고 변경 비하인드 스토리
"1990년대와 2020년대의 현대차·기아의 이미지를 그려줘."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에 1990년대와 2020년대의 현대차·기아 브랜드에 대한 인상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1990년대 현대차를 나타낸 이미지에는 동글동글한 디자인의 세단 엑셀과 함께 ▲싼 가격 ▲무난함 ▲내수 중심 ▲실용성이란 키워드가 등장했다. 2020년대에는 직선형 디자인이 강조된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이오닉 5가 중앙에 배치됐고 ▲혁신과 감성 ▲글로벌 프리미엄 ▲전기차·자율주행 ▲지속가능성 등의 키워드가 그려졌다. 배경에는 차세대 모빌리티 수단인 미래항공교통(AAM)도 추가됐다.
챗GPT는 지난 30년간 기아의 이미지 변화도 단숨에 그려냈다. 1990년대 기아를 나타낸 그림에는 대표 모델인 프라이드가 전면에 배치됐으며 배경은 공사장, 인물은 점퍼를 입은 중년 남성으로 표현됐다. 주요 키워드로는 ▲오래가는 ▲실용적인 ▲투박한 등의 키워드가 따라왔다. 반면 30년 이후 기아의 이미지는 ▲혁신적인 ▲글로벌 ▲세련된 등으로 키워드의 느낌이 완전히 바뀌었다. 2020년대 기아를 상징하는 대표 모델도 충전 중인 전기차 EV6로 변했으며 등장인물은 초고층 건물을 배경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든 세련된 젊은 남성으로 묘사됐다.
AI가 가상공간에서 정리한 지난 30년간 현대차·기아의 브랜드 위상 변화는 현실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2024년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Interbrand)가 발표한 가치평가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는 230억달러로 최근 5년간 63% 상승했다. 전 세계 모든 브랜드 중에서 순위는 30위, 완성차 브랜드 중에서는 6위였다. 도요타, 메르세데스-벤츠, 테슬라 등에는 뒤졌지만 폭스바겐, 포르셰, 아우디, 포드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친 결과다. 같은 기간 기아는 86위로 100위권에 겨우 안착했지만 4년 연속 순위가 가파르게 올라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24년 기아의 브랜드 가치는 81억달러로 4년 사이 39% 상승했다.
현대차는 브랜드 가치를 측정하는 자체 진단 시스템(툴)도 보유하고 있다. 40여개국에서 표본을 추출해 브랜드 인식 조사를 시행하고 정량·정성적 평가를 실시한다. 지성원 현대차 브랜드마케팅본부 전무는 "성별과 연령, 구매자 또는 구매 예정자 등 정교한 샘플링 작업을 거쳐 브랜드의 인식을 측정하는 조사를 꾸준히 시행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시장별 인식 차이, 또는 경쟁사와의 비교 등을 계량화해 추적한다"고 말했다.
프리미엄·고성능·수소…기술 리더십 통한 혁신
현대차와 기아가 온·오프라인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각인되는 이미지를 비교해보자. 우선 현대차는 기술 리더십을 통한 혁신, 제네시스를 활용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는 반면 기아는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표방한다.
현대차는 제네시스를 활용한 고급화 전략, 고성능 N 브랜드 강화, AAM과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에 지속적인 투자 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첨단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혁신 브랜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상위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독립 브랜드로 출범해 제네시스의 고급화 이미지가 부각될수록 현대차에도 프리미엄 이미지가 따라오는 효과를 노렸다. 2015년 제네시스가 독립 브랜드로 탄생하기 이전까지 현대차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차, 접근하기 쉬운 대중차로만 여겨졌다. 제네시스의 성공 이후 현대차는 고급차도 만들 수 있는 기술력 있는 기업으로 인정받게 된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 제네시스가 현지 품질 조사(J.D 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수차례 1위를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현대차의 기술적 위상도 올라왔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새로운 혁신 기술을 제네시스에 가장 먼저 적용한다. 내비게이션과 연동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방향 지시등을 켜면 자동으로 차선을 바꾸는 운전자보조시스템 등 첨단 기술이 제네시스 상위 차종에 가장 먼저 탑재됐다. 이를 통해 대외적으로 제네시스의 고급차의 이미지, 첨단 기술력을 강조한다. 같은 기술을 시간차를 두고 현대차 차종에도 적용함으로써 현대차에도 첨단 프리미엄 이미지를 입힐 수 있도록 했다.
제네시스와 현대차에 고성능 브랜드를 강조하는 것도 비슷한 기술 마케팅 전략의 하나다. 2015년 현대차는 고성능 브랜드 N을 론칭하고 본격적인 기술 홍보에 나섰다. 모터스포츠 우승 사례나 참가 모습을 대중에게 자주 노출시키면서 기술력이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전기차 아이오닉 5의 고성능 버전 아이오닉 5 N, 전동화 고성능 콘셉트카인 RN 22e, 수소하이브리드 콘셉트카 N 비전 74 등 다양한 콘셉트의 고성능 친환경차를 만들었고, 제네시스에도 고성능 라인업을 만들어 모터스포츠 진출을 준비 중이다. 우수한 전동화 기술력을 자랑함과 동시에 현대차도 '운전의 즐거움'을 위한 재미있는 차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같은 투자는 곧 브랜드에 대한 팬덤으로 이어진다. 팬덤은 돈으로는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브랜드 제고 효과를 불러온다.
현대차는 수소 에너지를 적극 활용해 지속가능성 분야에서도 브랜드의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었다. 경쟁사 중에 수소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브랜드는 현대차와 도요타, 혼다 정도다. 이 중에서도 현대차는 가장 선두에서 글로벌 수소 생태계 조성을 주도하고 수소 사회를 이끄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차는 단순히 수소전기차를 파는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수소의 생산, 운송, 유통, 저장, 활용까지 관여하는 수소 밸류체인을 아우르는 친환경 브랜드를 표방한다.
현대차는 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수소전기차 넥쏘의 효용성을 알리는 'H2U(Hydrogen to You)' 캠페인,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BTS)과 협력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수소의 친환경성을 전하는 '비코즈오브유(Because of You)' 캠페인 등 수소를 활용한 글로벌 캠페인을 진행하며 수소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기도 했다.
2024년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에서는 기존의 연료전지 브랜드였던 'HTWO'를 현대차그룹의 수소 밸류체인 사업 브랜드로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룹 계열사 각자가 수소 사업에서 하나씩 역할을 맡아 전반적인 수소 생태계를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현대건설은 수전해 기반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플랜트를 운영하고 충전인프라 또는 수소생산시설 설계·시공을 맡는다. 현대제철은 철강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과 폐열을 활용해 블루·그레이수소를 생산하며 현대글로비스는 수소를 액체 또는 고압 기체 형태로 안전하게 운송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대차는 수소를 활용해 우리 실생활 이동에 활용할 수 있는 수소전기차를 만든다. 이 같은 전 계열사에 걸친 수소 생태계 조성은 현대차가 기후 위기 대응, 탄소중립 등 지속가능한 미래에 관심을 가진 친환경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기아, 대중·실용적 모빌리티 브랜드로
2021년 기아는 사명과 새로운 슬로건, 기업이미지(CI) 변경을 통해 브랜드의 재정립을 시도했다. 기아는 사명에서 '자동차(motors)'를 떼고 '기아(KIA)' 브랜드로 다시 태어났다. 1990년 기아산업에서 기아자동차로 사명을 바꾼 지 30년 만이다. 전통적인 완성차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기아는 슬로건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힘(The Power to Surprise)'에서 '영감을 주는 움직임(Movement that inspires)'으로 바꿨다. CI 로고도 기존의 동그란 테두리 안에 있던 빨간색 'KIA' 로고에서 'KIA'라는 영단어에 필기체 느낌을 가미한 로고로 바꿨다.
새로운 로고는 우연한 기회로 탄생했다. 기아는 2015년 무렵부터 브랜드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거액을 들여 외부 자문기관의 컨설팅을 받기도 하고 오랜 기간 자체적인 조사도 거쳤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이미지는 그나마 젊고 실용적인 편이었지만 문제는 국내 시장이었다. 국내에서 오히려 올드하다, 촌스럽다, 진부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특히 기성세대에게 기아는 외환위기를 겪고 파산한 회사로 인식됐기에 쇠락과 몰락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아 경영진은 수년에 걸쳐 브랜드 개편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지금의 새로운 로고는 2019년 제네바 국제 모터쇼에 공개된 '이매진 바이 기아(Imagine by Kia)' 콘셉트카에서 시작됐다. 콘셉트카의 디자인은 일단 마쳤는데 기존의 동그란 타원형 안에 'KIA'가 쓰인 빨간 로고가 당최 어울리지 않았다. 유럽 디자인 연구소에서 콘셉트카에 어울리는 로고를 급하게 만들어 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고 한다. 이후 기아가 브랜드 로고를 바꾸기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 컨설팅을 받아봤지만 마음에 쏙 드는 시안이 없었다. 그러다 제네바모터쇼 당시 만들었던 로고가 생각났고 실무자들이 경영진에 이를 보고했는데, 바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이후 로고의 비율과 글자의 크기 등을 정교하게 수정해서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지금 기아차 트렁크에 얹히는 필기체 스타일의 'KIA' 로고다.
브랜드 재정립 이후 기아는 전기차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친환경 모빌리티 브랜드로 탈바꿈하게 된다. 특히 감성과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젊고 실용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고객 체험형 공간을 조성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혔다. 기존에 대리점, 전시장으로 불리던 장소를 '기아 스토어'로 명명하고 따뜻하고 안락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 표준도 만들었다. 마치 미술관에서 자동차를 관람하듯 제품을 체험하고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패션브랜드 무신사, 글로벌 체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등 다양한 최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고 MZ세대 사이에서 유명한 인디밴드 등 아티스트와 협업도 병행했다.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도 기아가 공들이는 분야다. 기아는 글로벌 테니스 대회 호주오픈(A0)을 24년간 후원해 온 최장기간 후원사다. 동시에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을 글로벌 홍보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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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마케팅의 측면에서 기아는 '대중적·실용적인 전기차'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시장에 던지고 있다. 실구매가 3000만원대의 소형 EV3 출시를 시작으로 중형 세단 EV4, 엔트리급 SUV EV2까지 선보이며 전기차 라인업을 완성한다는 구상도 발표했다. 고객 맞춤형 상용 전기차인 목적기반차량(PBV) 사업을 확대하며 실용성을 내세운 전기차 보급 확대 전략을 세우고 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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