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이 매수인 우위 전환
매도인, 거래 희망 문의 속출
섣불리 규제 지정 비판도
시장, 6개월간 관망세 전망
"일주일간 애태우던 집주인이 19일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재지정 발표 당일에 계좌번호를 보냈어요. 그런데 매수인은 며칠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네요." (이촌동 A 공인중개업소)
19일 찾은 서울 용산구 이촌동. 평일 오후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이촌동의 B 공인중개소 전화통은 쉬지 않고 울렸다. 이곳은 서울 강북권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LG한강자이, 래미안 첼리투스 등 한강 변 일대 고가 아파트가 밀집된 지역이다.
B 중개소 소장이 수 분간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자 다시 벨소리가 울렸다. 그는 "집을 팔아도 될지 묻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지친 기색을 내보였다. A 공인중개업소 소장은 "갭투자자들이 토허구역 지정 소식에 동요하고 있다"며 "향후 시장 상황이 몹시 걱정된다며 찾아온 손님들이 많다"고 말했다.
매수인 우위 전환…마음 급해진 '갭 투자'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용산구 일대 부동산 시장은 서울시와 정부의 오락가락 대책에 크게 동요했다.
전날 서울시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소재 모든 아파트를 상대로 토허구역을 확대 지정하기로 했다. 지난달 12일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 지역에 규제를 푼 뒤 한 달여 만에 재지정이다. 강남을 중심으로 오른 집값 상승세가 서울 전역으로 퍼지자 용산구까지 거래 시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 지역 내 집주인들은 혼란에 빠졌다. 집 사겠다는 이들과 흥정하던 집주인들은 "당장 도장 가져오세요"라며 태도를 바꿨다. 그러나 규제 해제 이후 집값의 향방을 지켜봐야 하는 매수인들 입장에서는 쉽사리 거래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이촌동의 B 공인중개업소 소장은 "갈아타기를 원하는 매도인은 빨리 집을 팔아야 한다며 다급해 하는 분위기"라며 "집주인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빨리 집을 팔 수 있냐는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촌동 C 공인중개업소 소장은 "매도인 중심으로 조율해왔던 거래조건이 하루 사이 공중에 붕 떠버렸다"며 "매수자들이 시장을 지켜보자는 태도로 변하자 매도인들의 심경이 복잡해졌다"고 토로했다.
갭 투자자들은 재빨리 계약을 체결하고 나섰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려면 토허구역을 확대 시행하는 이달 24일 전까지 거래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A 공인중개업소 소장은 "공인중개업자들의 정보통을 통해 '비싼 호가에 나왔던 기존 매물들이 19일 거래됐다'는 문자를 여러 곳에서 받았다"며 "갭투자하는 분들이(매수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6개월 기다리자…집값 내려가기는 힘들어"
다만 이 같은 혼란이 장기전으로 접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토허구역을 풀면 가격이 오른다는 것에 대한 학습 효과가 생겼으니 매도·매수자가 당분간 거래를 멈추고 관망세로 머무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C 공인중개업소 소장은 "토허구역을 해제하면 집값이 뛴다는 걸 모두 알지 않았냐"라며 "6개월만 있으면 규제가 해제되니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시장을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시장 과열 흐름이 용산구까지 충분히 확산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를 섣불리 지정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직방에 따르면 용산구의 지난달 전체 아파트 거래량은 102건으로, 이 중 신고가 거래 비중은 전체의 23%(23건)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초구의 경우 전체 거래량(234건) 중 신고가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44%(102건)에 달했다. D 공인중개업소 소장은 "이촌동의 경우 거래가 구정 이후부터 거래가 본격적으로 활발해졌다. 아직 강남3구보다 과도하게 집값이 올랐다 볼 수 없다"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규제가 지정된 듯하다"고 지적했다.
토허구역을 지정해서 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강남·서초·송파·용산구의 경우 아파트 매입 시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므로 투기 목적의 매매가 급감할 가능성이 크다. 단기적으로는 거래량 감소가 전망된다"고 말했다. 다만 "서울 핵심 지역 아파트는 희소성이 높아 매도자들이 쉽게 가격을 낮추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장기적인 가격 하락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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