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속 살아남은 기억
HBM 패키징 기술 개발
전자제조기술상·강대원상
이강욱 SK하이닉스 첨단패키징 개발 담당 부사장은 지난 11일 14년 전 자신을 생사의 갈림길에 세웠던 날을 떠올렸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 도호쿠 지역에선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이 부사장은 도호쿠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수로 지진의 공포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에게 이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재난의 현장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와 동시에 지금의 삶에 대한 깊은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지진으로 인해 고통받고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마음도 함께 담겨 있다. 이 부사장은 13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그날 살아남았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당시를 담담히 회상했다.
생존의 문턱을 넘은 경험은 이 부사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조금 더 일본 도호쿠대학에서 일하며 연구한 성과를 인정받은 후 2018년 SK하이닉스에 입사, 웨이퍼 레벨 패키지(WLP) 개발 담당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제품에 필요한 패키징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특히 이 부사장은 2019년 HBM 3세대 제품인 HBM2E가 개발될 당시 MR-MUF(반도체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간 사이에 주입하고 굳히는 공정 기술)라는 혁신 기술을 성공적으로 도입해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SK하이닉스가 회사 고유의 기술로 자랑하고, 최고층의 HBM3E, HBM4까지 넘볼 수 있게 한 그 기술이다.
이런 성과들을 인정받아 이 부사장은 학계에서 중요한 상들을 휩쓸었다. 지난해 5월에는 우리나라 사람 중에선 최초로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 산하 전자패키징학회(EPS)로부터 전자제조기술상을 받았다. IEEE는 전 세계 전기·전자공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구다. 지난 2월에는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제32회 한국반도체학술대회에서 제8회 강대원상 수상자로 선정돼 상을 받았다.
이 상은 반도체 산업에 기념비적 발자취를 남긴 故 강대원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자 만들어졌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반도체 후공정인 패키징 분야에서 기업인이 이 상을 받기는 이 부사장이 최초다. 강대원상 상패를 손에 든 사진을 스마트폰 메신저 메인 사진으로 올린 이 부사장은 "받은 상들은 모두 의미가 있는데, 강대원상이 조금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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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사장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까. 그는 차기작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에 맞춰 부지런히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패키징 기술이 반도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해온 그의 이전 모습들을 되돌아보면, 이 부사장의 눈과 귀는 새로운 패키징 기술 개발에 맞춰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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