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보워 대통령 대선 공약
매년 14조원 이상 투입위해
무상급식 실행에 군대 동원
![[아시아 르포]세계 3대 쌀 생산국 인도네시아의 무상급식 논란](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4062711120731528_1719454327.jpg)
'식량부족'은 따뜻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에 쉽사리 떠올릴 수 없는 이미지다. 해마다 3모작을 할 만큼 기후환경이 농업에 적당하고 국민 대다수가 농사일에 종사하는 영향도 크다. 인구 3억명에 근접한 동남아 대국 인도네시아 역시 마찬가지인데, 아이러니하게 자국의 안보 이슈로 ‘식량 위기’를 꼽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지리적 특수성 탓이다. 인니는 6000개의 유인 섬으로 이뤄진 섬나라(전체는 2만개)인데, 모든 섬 지역이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이들 격오지 섬 지역에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까다롭다. 그래서 외부의 위협보다 식량 자급이 우선순위 안보 이슈다.
실제로 세계 3대 쌀 생산국이면서도 2024년 세계 기아(飢餓)지수 127개국 가운데 77위를 차지했으며, 인구의 8%(2300만명)가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 자국 내 생산이 어려운 밀, 대두를 비롯해 특히 소고기와 유제품은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한다. 이 밖에도 엘니뇨와 같은 기후 변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식량 가격 상승은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어린이들 사이에 영양실조는 흔한 일로 5세 미만 30%가 영양 부족으로 인한 발육 부진을 겪을 정도다.
프라보워 인기 공약
그래서 지난해 10월 말 취임한 프라보워 수비안토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국가 무상급식 프로그램을 도입해 공중 보건과 국가 경제 혁신을 약속한 것이다. 일종의 인니 판 '무상급식' 공약이다. 취임 직후부터 시작된 무상급식 프로그램은 2029년까지 연간 8000만명의 초·중·고교 학생을 비롯해 영유아와 임산부 등 약 9000만명에게 하루 한 끼 급식과 우유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프라보워 정부는 이를 위해 올해에만 171조루피아(약 14조원)을 배정했으며, 이는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복지 프로그램으로 격상됐다. 당연히 이를 통해 아동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고 교육 성과를 향상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개입으로 널리 환영받는다. 무상급식을 통해 어린이들의 발육을 돕고 빈곤 퇴치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취임 초 프라보워의 인기는 80% 이상으로 치솟았다.
식량이 안보인 나라에서 '무상급식'은 이상적이다. 관건은 효과적이며 지속적 유지 여부다. 특히 재원 조달이 문제다. 매년 14조원 이상의 큰돈을 새정부가 지속해서 확보할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이 큰 프로젝트가 중간에 새지 않고 6000개 섬 아이들에게 제대로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증이 인다.
커가는 의구심
무상급식 예산 마련을 위해 프라보워 정부는 올해 약 28조원 규모의 예산 삭감을 지시했고, 결과적으로 48개 전 부처가 각종 사업을 줄줄이 취소하기 시작했다. 인프라 사업이 대표적이다. 정부 인프라 사업 공공사업부는 "올해 예산이 전년 대비 80% 삭감됐다며 도로와 교량 유지보수 사업 등이 상당수 취소된다"고 밝혔다. 교육 예산이나 연구개발(R&D) 예산은 물론이고 정부 사무실에서 쓰는 식수와 화장지 공급까지 멈췄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산 효율성 지침' 강도는 앞으로 더 강화되고, 무상급식 같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배정할 것이란 계획이다.
더 큰 문제는 무상급식 프로그램을 명분으로 군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는 대목이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장성 출신의 대표적 군부 인사다. 당선 직후 앞으론 군부 영향력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번 무상급식 프로그램 중심에는 인도네시아 군대(TNI)가 자리 잡고 있다. 식품 유통과 격오지 학교에 주방을 설치하는 사업에 각 지방에 주둔한 군대가 나선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군 소유의 토지를 쌀과 옥수수 생산을 위한 농지로 바꾸고 있다. 정부 예산이 가장 먼저 군대로 향한 것이다.
자연스레 취임 초 치솟았던 프라보워의 인기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약 900만명에 달하는 미취업 청년들이 연대해 '정부 예산 삭감'과 '만연한 공직 부패'를 비판하며 "나라를 탈출해야 산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떠들썩하게 시위 중이다. 예산이 부족해 수도이전 사업 등 예정된 사업이 좌초된 사이, 군인들이 학교에 출동해 쌀, 닭고기, 우유 등 음식 쟁반을 나눠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최근 프라보워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 정치인들은 초호화 파티를 열어 "우리 국민, 우리 아이들은 배고프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무상급식 공약 이행을 자축한다. 프라보워 대통령의 위기가 이미 시작됐다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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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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