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북부지법 강우찬 부장판사
일반인 대상으로는 처음
쟁점 쉽게 설명한 부분 추가
“이지리드 제공 확대 가능”
#. B씨는 2015년 5월부터 2년 동안 임차하던 집을 2018년 7월부터 2022년 7월까지로 임차하기로 추가 계약했다. 이때 B씨는 A 회사로부터 2000만 원을 대출받았고, 대출금 채무에 대한 담보로 자신이 임차한 집의 임대차 보증금 중 2000만 원을 양도했다. B씨 대출의 변제기한은 2027년 1월이었고, 이자율은 연 20%이었다. C씨는 2022년 4월 이 집의 기존 임대인으로부터 집을 매수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B씨는 그런데 A 사에 대출 원리금을 변제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기준 B씨의 대출금 채무는 원리금 합계 2459만 원에 달했다. 이에 A 사는 “B씨는 C씨에게 집을 인도하고, C씨는 B씨에게 집을 인도 받음과 동시에 2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북부지법 민사10단독 강우찬 부장판사는 A 사가 B씨와 C 씨를 상대로 낸 건물 인도 청구 소송(2023가단155398)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면서 이 사건 판결서에 소송대리인 없이 소송을 진행한 피고 C 씨를 위해 ‘당사자 본인 소송을 하는 C 씨가 주로 다투고 있는 쟁점에 대한 보다 쉬운 설명’을 추가했다.
소위 ‘나홀로 소송’ 당사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쉬운 판결서’가 나왔다. 법원이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지 않고 스스로 소송을 진행하는 당사자가 판결 취지와 핵심 쟁점 등을 쉽게 설명하는 내용을 추가한 판결서를 만든 것. 당사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자는 취지로 법률 지식이 부족한 당사자들 일반으로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존댓말로 쓴 판결서
강 부장판사는 기존 판결 형식과는 다르게 높임말을 썼다. 그는 “재판장은 법정에서 위 피고께서 가장 궁금하고 억울해하시는 부분에 대해 다시 잘 살펴보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라며 “혹시라도 놓친 것이 없는지 해당 법리와 사실관계를 다시 잘 살펴봤고, 그에 따라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하는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고 밝혔다. 이어 “어려운 법리에 관한 것이지만 억울함이 없도록 최대한 쉽게 설명해 보았습니다”며 “비록 변호사가 없는 사건이더라도 법원에서는 한 사건, 한 사건 최대한 성심껏 재판하고 있음을 이를 통해서라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고 썼다.
‘쉬운 판결서’는 법리적 쟁점에 대해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쓰였다. 강 부장판사는 “종전 집주인에게 보증금 반환 채권이 양도됐다는 사실이 통지되면 그때부터는 종전 집주인은 그 해당 금액에 대해선 더 이상 세입자에게 반환해 봐야 보증금 채권을 양수한 사람에게는 그러한 사정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됩니다”며 “이후 새 집주인이 세입자와 새롭게 계약기간을 연장하더라도 보증금 반환 채권을 양수받은 사람에 대해 그러한 주장을 할 순 없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연히 채권이 다시 양도됐다는 사정만으로 제3자들 사이의 약정에 따라 권리의 내용이 갑자기 불리하게 바뀔 순 없다”며 “이렇기 때문에 세입자가 들어 있는 집을 사고 팔 때는 보증금 반환 채권이 압류돼 있거나 양도가 돼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집을 파는 사람도 이런 사실을 반드시 알려줘야 합니다”라고 부연했다.
강 부장판사는 “보증금 반환 채권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겼고, 월세는 보증금 한도에서만 공제되는데 여기서 집주인(또는 이후의 새 집주인)과 세입자가 기한을 추가로 연장해 버리는 것을 허용하면 임차보증금을 양수받은 채권자의 권리는 허공으로 사라지게 됩니다”며 “공평과 거래 안전을 추구하는 법이 이런 상황을 허용할 순 없지 않을까요? 이런 법 논리에 따라 C 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됩니다. 잘 이해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정리했다.
삽화 넣은 판결서 만들기도
강 부장판사가 ‘쉬운 판결서’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 재판장을 지내며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해 ‘청소년인 원고를 위해 쉬운 말로 정리한 판결의 내용과 당부’를 추가한 판결, 장애인인 원고를 위한 ‘쉬운 말로 요약한 판결서의 내용’이라는 글상자와 삽화를 함께 삽입한 판결서 작성에 관여했다. 이에 법원 내에선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비장애 성인으로까지 ‘쉬운 판결서’를 확대 제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낸 권형관(42·사법연수원 40기)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서 작성 방안’ 연구보고서에서 “이 판결은 장차 이지 리드 또는 평이한 언어로 된 판결서의 제공 대상을 문해력 수준이 낮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 성인까지 확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미국에서는 변호사의 조력 없이 이른바 ‘나홀로 소송’을 하는 당사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이한 언어로 판결서를 제공한 사례들이 있다”고 밝혔다.
지금 뜨는 뉴스
한수현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