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형 흡연부스 도입, 환기시설 정비 필요"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최모씨(29)는 최근 들어 탈취제를 사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전자담배 흡연자인 최씨가 흡연구역을 다녀올 때마다 온몸에 배는 연초 냄새를 견딜 수 없어서다. 최씨는 "연초 냄새가 싫어서 비교적 나은 전자담배로 바꿨는데, 흡연구역에서는 연초 냄새가 독해 가기가 꺼려진다"며 "비흡연자를 생각하면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워야 하지만, 가끔은 흡연구역이 있어도 주변을 살핀 뒤 골목에서 피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심 곳곳에 설치된 흡연구역이 전자담배와 연초 이용자를 별도로 분리하지 않아 전자담배 이용자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일부 전자담배 이용자는 연초 냄새 탓에 흡연구역 이용을 꺼리는 등 제도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흡연구역 130곳…전담 이용자 "연초 냄새 때문에 잘 안 가"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서울지역에 설치된 흡연부스 등 공공 실외 흡연구역은 130곳이다. 민간 흡연구역은 서울시 추산(마지막 조사) 약 1300곳이다. 흡연자들은 전자담배, 연초를 구분하지 않고 이곳에 모여 담배를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전자담배 흡연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직장인 김모씨(31)는 "전자담배 흡연자는 대부분은 연초 냄새가 배는 것을 싫어한다"며 "흡연구역에는 연초를 피우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냄새가 밸까 흡연구역이 아닌 골목 같은 데서 담배를 피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만난 이기성씨(33)도 "연초 냄새가 배는 게 싫어 전자담배로 갈아탔다"면서 "그런데 연초 흡연자들과 한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면 무슨 의미가 있나"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흡연구역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전자담배 이용자 상당수는 담배 냄새가 배는 게 싫어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이 지난 13일 공개한 '흡연 실태 및 전자담배 관련 조사'에 따르면 전자담배 흡연자 54.9%는 전자담배를 접한 이유로 '몸에 담배 냄새 나는 게 싫다'는 점을 꼽았다. 이들은 전자담배가 '일반담배에 비해 상대에게 불쾌감을 덜 유발한다'(53.1%)라고도 평가했다.
전자담배 이용자들이 흡연구역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흡연에 따른 처벌은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지정된 학교, 유치원 등 금연구역에서 흡연할 경우에만 이뤄진다. 처분도 1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그치고 있다. 금연구역 외 나머지 지역에서는 흡연 규제가 없으며, 꽁초 투기 시에만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매긴다.
전담·연초 이용자 나누는 분리형 흡연부스 부족한 실정
흡연자가 담배 종류별로 따로 흡연하는 '분리형 흡연부스'는 전무한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강남구가 지자체 최초로 분리형 흡연부스를 시범운영했지만, 현재는 철거한 상태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당시 행사를 진행해서 이벤트성으로 부스를 설치한 것"이라며 "향후 설치 사업 추진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다"고 했다.
분리형 흡연부스는 카페 등 일부 민간 시설에만 설치된 실정이다. 분리형 흡연부스가 있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씨(22)는 "전자담배와 연초를 흡연할 공간이 분리되니 냄새도 안 배고 훨씬 만족스럽다"며 "이 카페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자주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자체에서는 분리형 흡연부스는커녕 흡연구역 자체를 늘리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흡연구역을 늘려야 한다는 법 조항도 없을뿐더러, 흡연구역 지정에 따른 주민 의견 수렴도 어려워 현실적으로 늘리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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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흡연자들의 흡연구역 이탈을 막으려면 흡연구역 내 환기시설 관리 강화와 함께 분리형 흡연부스 설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승호 대구보건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흡연에 대한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흡연자들이 흡연구역에서 흡연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환기장치에 예산을 투입하고 이 장치를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며 "그래야 냄새 문제에 따른 흡연구역 기피 현상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했다. 구성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자담배 흡연자의 흡연구역 이탈은 비흡연자들에게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조례를 통해 분리형 흡연부스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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