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선박 통행료 면제 합의"
파나마 대통령 "거짓 기반 외교 규탄"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국과 파나마 간 갈등이 6일(현지시간) 진실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해군 등 정부 선박이 파나마 운하 통행 시 통행료를 면제받기로 파나마 정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파나마 정부는 합의된 사실이 없다며 이를 정면 반박했다.
전날 미 국무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미국 정부 선박은 이제 파나마 운하를 통행료 없이 통과할 수 있다"며 "미국 정부는 연간 수백만 달러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도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과 통화했다"며"헤그세스 장관과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미군과 파나마군 간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고, 광범위하고 확대되는 협력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물리노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 선박의 통행과 관련한 미국 측 주장은 허위 사실에 근거했다"며 "제가 아는 한 우방국 간 양자 관계는 이런 식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거짓에 기반한 외교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또 워싱턴 주재 파나마 대사에게 국무부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기라고 요청했으며, 트럼프 대통령과 7일 오후 통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파나마 정부에 따르면 파나마운하청(ACP)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률 76조에는 '정부나 ACP가 대양 간 수로(파나마 운하) 사용에 대한 통행료 또는 수수료를 면제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현지 일간 라프렌사파나마는 ACP 이사회가 통행료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ACP 이사회에서 통행료 변경을 의결하더라도 국무회의의 최종 승인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미 해군 함정 수는 연간 40척 안팎으로, 전체 운하 통행량의 0.5%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이 선박들이 통행료를 내지 않을 경우 8500억달러에 달하는 미 국방부 예산 중 1300만달러를 아낄 수 있다고 추산했다.
물리노 대통령은 "(절감된다는) 1000만달러 상당이 미국 같은 나라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운하 통행료가 미국 경제를 파산시킬 만한 정도는 아니지 않으냐"라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 대통령 지휘를 받아 외교 정책을 관장하는 기관에서는 왜 거짓을 근거로 중요한 공식 성명을 내놓느냐"고 지적했다.
WSJ는 협상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 국무부의 발표는 법적 절차를 앞서나간 것으로, 파나마 관리들은 이를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방식으로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파나마 운하 당국은 일부 선박에 대한 통행료 면제는 전례가 없는 데다 미국 선박 특혜 문제로 다른 나라들과의 국제 소송이 줄을 이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리카우르테 바스케스 모랄레스 파나마운하청장은 지난달 WSJ 인터뷰에서 "운하 관리 영구적 중립성 준수 의무를 위반할 경우 큰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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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파나마와 조약을 맺어 운하를 건설한 뒤 80년 이상 관리·통제하다가 영구적 중립성 보장 준수 등을 조건으로 1999년 파나마에 운영권을 넘겼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러 차례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홍콩계 기업에 2개 항구 운영권을 맡긴 것을 두고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통제하고 있다며 1999년 미국과 파나마 간 조약 위반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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