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지 동편에서 대형 건물지 발견
내부에 별도로 조성된 원지도 있어
"'동궁과 월지'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
"태자가 항상 동궁에 거처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사시(四時)에서 동쪽은 봄을 의미하니, 만물의 생장은 동쪽에 있다. 서쪽은 가을을 의미하니, 만물의 성취는 서쪽에 있다. 이에 임금은 서궁에 있고 태자는 항상 동궁에 머무르는 것이다."
당나라 학자 공영달(574~648)이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에 풀이한 법도다. 임금과 태자의 거처를 구분해야 나라가 번창하고 왕실이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봤다. 그 무렵 신라도 태자가 기거하는 동궁을 따로 마련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문무왕 14년(674)에 연못인 월지를 조성하고, 5년 뒤 건물을 지었다.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
당대 토목 기술이 집약됐을 별궁은 그동안 월지 서편에 있었다고 여겨졌다. 국가유산청은 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새로 쓰는 신라사' 언론공개회에서 이 같은 속설을 완전히 뒤집었다. 지난 10년간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동궁이 월지 동편에 있었다고 못박았다. 최응천 청장은 "최근 월지 동편에서 서편보다 한 단계 낮은 위계(位階)의 건물지를 확인했다. 이 건물지를 동궁으로 보고, 그동안 동궁으로 추정했던 서편 건물지를 왕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월지 서편 건물지는 신라 궁궐이 있던 월성의 동쪽에 있어 동궁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주변보다 높게 조성된 대지에 위치하고, 건물의 위계 또한 높아 동궁이라 단정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월지 동편에서 확인된 유산은 복도식 건물에 둘러싸인 대형 건물지와 그 앞에 펼쳐진 마당 시설, 회랑(回廊), 익랑(翼廊) 등이다. 핵심인 대형 건물지는 정면 다섯 칸(25m), 측면 네 칸(21.9m) 규모로, 내부 기둥을 없앤 감주(減柱) 구조였다. 월대(月臺) 공간을 증축한 흔적과 계단 다섯 기 등이 함께 발견됐다.
월지 동편 내부에는 별도로 조성된 원지(양식이나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정원 안의 못)도 있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너비와 길이는 각각 43.56m와 17.2m다. 못의 중앙과 남쪽에 섬을 구축한 흔적이 있어 수려한 경관을 갖췄으리라 추정된다. 최 청장은 "독립된 배수 체계까지 갖추고 있어 신라인들의 토목 기술은 물론 '동궁과 월지'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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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가유산청은 최근 월성에서 발견한 미공개 의례 유물들도 함께 공개했다. 의례 제물로 바쳐졌던 개와 수정 목걸이가 담긴 나무상자, 동근 고리칼, 상어 이빨, 콩 1200여 알 등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유산은 옻칠이 된 나무상자 속에서 찾아낸 수정 목걸이다. 최 청장은 "꿰어진 실까지 함께 나왔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해 사로국 시기 신라의 의례 모습을 밝히는 주요 실마리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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