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평원, 지난달 원광대 의대 불인증 유예 판정
교육부, '의평원 무력화법' 입법예고 절차 진행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지난한 대립이 '의대 인증' 제도와 관련한 날카로운 신경전으로 또다시 비화하고 있다. 대화와 타협은커녕 각자의 권한을 이용해 사실상 서로를 위협하기만 하는 상황이 재현되면서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6일 아시아경제 취재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해 9월 입법예고한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의 규제심사를 포함한 최종 실무 절차에 최근 착수했다. 개정을 유보하겠다던 기존 입장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개정안은 의대 자체 노력과 무관한 요인으로 학사 운영이 정상적이지 못하거나 교육여건이 저하돼 의대로서 인증받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바로 미인증 처분을 내리지 않고 '1년 이상의 보완 기간'을 반드시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의대 인증 여부에 대한 판단의 실질적인 주체는 의사단체이자 의대 평가인증 관련 교육부 지정 기관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다. 의평원은 의대 내부에 중대한 변화가 생기는 경우 이것이 교육의 질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를 평가할 수 있다. 의평원 평가의 대상이 되는 요소 중 한 가지가 총 재적생 대비 10% 이상의 학생 증원이다. 대규모 휴·복학 등에 따른 증원에서부터 정부 정책에 따른 증원까지 폭넓게 평가의 도마에 올릴 수 있는 만큼 의대 증원이라는 정부 정책에 합법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다.
평가에 따른 유예 기간은 지금도 부여할 수 있는데, 유예 기간을 부여할지 바로 불인증 처분을 내릴지에 대한 권한은 의평원에 있다. 이 같은 체계를 바꿔 부정적인 평가를 받더라도 무조건 1년 이상의 보완 기간을 부여토록 해 의평원의 권한을 일정부분 무력화하겠다는 게 교육부 개정안에 내포된 의미다.
현행법상 모든 의대는 의평원의 평가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의평원의 인증을 받지 못한 의대에 입학한 이들은 졸업하더라도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없다. 얼마 전 원광대 의대에 대한 '중간평가'에서 불인증 유예 판정이 나온 바 있다. 의대 증원과는 별개로 진행됐지만, 주요변화평가 결과 발표를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의평원은 그간 대규모 증원이 있었던 대학들을 적극적으로 평가해 필요한 경우 불인증 처분을 내릴 수도 있음을 시사해왔다.
개정안 추진은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 정부가 아예 법을 바꿔 대응하려 했던 것이다. 고조되던 갈등은 정부가 지난해 12월 여야의정협의체 논의를 바탕으로 개정안 추진을 일시 중단키로 하면서 한고비를 넘기는 듯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026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규모도 제로베이스에서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2000명 증원 과정에 대해 사과 발언을 내놓은 점도 긍정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지도부를 꾸린 대한의사협회(의협)의 강경한 태도에 변함이 없고, 원광대 의대 불인증 유예라는 실제 사례가 발생하는 등 혼란상이 해소되지 않자 방향을 고쳐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올해 의대 교육 대책을 검토한 뒤에야 대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 장관과 김 회장의 비공개 회동도 한 번 있었지만, 의협은 회동 이후 "이 장관은 교육에 대한 대책도 없고 전공의 요구를 수용할 의지도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유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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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은 지난달 24일 안덕선 의평원장을 불러 개정안을 포함한 현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눴으나 접점을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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