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 학대 사건 은폐 의혹 나와
사건 피해자도 언론 통해 사의 촉구해
계속된 사퇴 압박에 결국 사임 표명해
세계 성공회 신도 8500만명을 이끄는 영국 성공회(국교회) 최고 성직자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68)가 결국 압박에 못 이겨 사의를 표명했다. 영국 성공회는 수십 년에 걸쳐 발생한 미성년자 성 학대 사건을 은폐했고 웰비 대주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사임 압박이 거세진 데 따른 것이다.
12일(현지시간) AP통신과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은 웰비 대주교는 이날 성명에서 "사임하는 것이 국교회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다"며 "모든 학대 피해자와 생존자의 슬픔과 함께한다"고 밝혔다. 그는 "2013년 이에 대해 통지받고 경찰에 알려졌다는 말을 듣고선 적절한 해결이 따를 것이라고 잘못 믿었다"며 "2013년과 2024년 사이 긴 기간에 내가 개인적으로, 공식적으로 책임져야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 영국 성공회 대주교 회의 의뢰로 발표한 독립 조사 보고서에선 교회 관련 활동을 하던 변호사 존 스미스의 아동학대 의혹을 교회가 감춘 것으로 파악됐다. 스미스는 1970년대부터 영국과 아프리카에서 100명 이상 소년이나 젊은 남성을 성적, 신체적,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2017년 방송을 통해 의혹이 제기되고서야 수사 대상이 됐고 2018년 사망해 법의 심판을 피했다.
이번 보고서는 웰비가 캔터베리 대주교에 취임해 이 의혹을 보고받은 2013년부터 웰비 대주교와 교구 주교를 포함한 교회 고위층이 경찰에 공식적으로 신고할 수 있었고, 신고했어야 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가 발간되자 영국 성공회의 의회격인 시노드 대의원과 주교 등이 웰비 대주교의 사임을 요구했다. 사건 피해자도 언론을 통해 사의를 촉구했다. 그가 이날 사의를 표명하기까지 1만3000여명이 사임 요구서에 서명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피해자들이 심각하게 제대로 된 대처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웰비 대주교의 거취 문제는 교회에 달린 일이라고 말했다. 웰비 대주교의 사임은 2013년 취임한 이후 11년 만이다.
웰비 대주교는 명문 사립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와 정유업계에서 11년간 일하다가 성공회 사제로 출발했다. 이후 리버풀 주임 사제, 더럼 주교 등을 지냈다. 그의 캔터베리 대주교 재임기 영국 성공회는 여성 주교 서임을 시작했다. 그는 202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과 2023년 찰스 3세 즉위식을 집전하기도 했다. 또한 기후변화, 빈곤, 전쟁, 부패, 기업의 사회적 책임, 난민 문제 등 글로벌 현안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성공회 수장으로 세계 165개국 신도 8500만명의 영적 지도자다. 후임 대주교 선출에는 적어도 6개월이 걸릴 것으로 BBC 방송은 전망했다.
방제일 기자 zeilis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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