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실화탐사대' 로맨스 스캠 사연 보도
피해 당사자 "친구에게 보낸 것…사기 아냐"
부동산 자산만 100억 원대 이상이라는 80대 자산가 여성이 외국인 남성에게 연애를 빙자한 사기 범행(로맨스 스캠)을 당해 15억원을 뜯겼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사기가 아니라 친구에게 돈을 보낸 것"이라며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방영된 MBC '실화탐사대'에서는 '82세 엄마의 위험한 끝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로맨스 스캠 피해자 A씨(82·여)의 사연을 전했다. 제보자는 A씨 아들이었다. 그는 "우리 어머니를 살려달라"며 해당 방송에 도움을 청했다.
피해자 가족은 A씨가 부동산 투자 등에 성공해 서울 구로동·천호동 상가 건물 등을 보유한 자산가라고 소개했다. A씨 아들은 어머니 통장에 임대 수익으로만 10억~20억원이 있었다고 전했다. 아들은 지난해 3~4월쯤 은행으로부터 "어머니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 관련 조사 도중 한 대포통장에서 A씨의 입금 내용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사기를 당한 게 아니라 친구에게 돈을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가 친구라고 밝힌 인물은 50대 예멘 출신 의사 '프랭클린 조'였다. 프랭클린 조는 A씨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그는 A씨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냈는데 사진 속 조는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몸매 등을 갖춘 호남이었다. 그는 A씨에게 "너는 나의 천사" "사랑한다"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 적극적으로 호감을 나타냈고 이들은 어느새 연인으로 발전했다.
어느 날 조는 A씨에게 "적대국 정권으로부터 돈 상자를 습득했다. 한국에 보내려 하는데 수수료가 필요하다"며 3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A씨는 돈을 보냈고 그 돈이 입금된 통장이 대포 통장으로 밝혀지면서 A씨의 피해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됐다. A씨 아들이 송금 명세를 확인해보니 A씨는 10억 원에 가까운 돈을 조에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A씨는 사기라는 가족들 말을 믿지 않았고 "실제로 없는 사람"이라는 상가 세입자 만류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1년간 연락이 이어지면서 A씨가 조에 보낸 돈은 계속 불어나 어느새 15억원에 이르다고, 급기야 A씨는 지난 3월 사망한 막내딸 사망보험금 5억원까지 조에게 보냈다.
박지훈 변호사는 방송에서 "로맨스 스캠 평균 피해 금액이 7000만원인데 15억원이라고 하면 평균의 20배가 넘는다"며 "한 자료에 따르면 13억8000만원이 로맨스 스캠의 최대 피해 금액이다. 이 사례가 가장 (금액이) 큰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조'의 실체 파악에 나섰다. 조가 보낸 사진 속 인물은 튀르키예의 유명한 의사로 파악됐다. 유부남이라는 그는 방송에 "이런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다"며 도용 피해를 호소했다.
A씨 아들은 어머니가 15억 원대에 이르는 큰 피해를 봤지만,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로맨스 스캠은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범죄가 이뤄지기 때문에 범인을 잡기 어렵고, 피해 구제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준배 경찰대 교수는 "전 세계 어느 국가를 봐도 사기 방지 센터가 있는 국가에서 로맨스 스캠 관련 계좌 지급 정지를 안 해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보이스 피싱과 달리 로맨스 스캠은 전자금융거래법 적용을 받지 않아 피해자의 계좌를 지급 정지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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