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11월 10일)을 계기로 '보수의 심장'으로 꼽히는 지역의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일 찾은 대구 서문시장. 비가 와 쌀쌀했지만 기자는 진땀을 흘렸다. 시장 사람들의 반응이 냉담했기 때문이다. 정치 이야기만 꺼내도 손을 휘저으며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런 걸 여기까지 와서 묻는 저의가 무엇이냐"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었다. 여론조사 업체 한국갤럽이 지난달 29~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상대로 윤 대통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19%로 집계됐는데, 낮은 지지도가 현장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무작위 추출 무선 가상번호 인터뷰 방식·응답률 11.1%)
그럼에도 이름을 공개하면서까지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 20대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찍었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망하게 된 이유는 다양했다. 민생이 망가지는데 윤 대통령은 원전 수주나 석유 시추 같은 '성과올리기'에만 열심이라는 지적이 먼저 나왔다. 윤 대통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소통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단순한 투덜거림 만은 아니었다. 의류 자재를 파는 한 상인은 인터뷰하는 내내 아무도 찾지 않는 시장 골목을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셔터를 내린 옆 가게 사장은 장사가 안돼 대리운전을 뛰러갔다고 했다. "나도 해야 하나…." 상인의 말에서는 나날이 힘겨움을 버텨내는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소시민인 그들이 기자에게 이름까지 공개한 건 그만큼 절실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임기 반환점을 맞는 윤 대통령의 태도에서는 아직 변화를 느낄 수 없다. 지난 4일 시정연설이 대표적인 예다.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자리에 본인 대신 한덕수 국무총리를 보냈다. 한 총리는 본인의 이름이 아닌, 윤 대통령을 주어로 4대 개혁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내용의 시정연설문을 읽었다. 윤 대통령이 국회로 오지 않은 이유는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과 명태균씨와의 녹취록 공개 등 정쟁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4대 개혁을 강조하면서, 예산안 심사 권한을 꽉 잡고 있는 야당과 대화하지 않는 대통령을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의 7일 기자회견에 한 가닥 기대를 거는 것은 서문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얼굴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윤 대통령은 출근길 도어스태핑에서 "지지율은 의미 없다.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 지지 없이는 제아무리 좋은 개혁도 추진하기 어렵다는 걸 이제는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던 2016년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물이 배를 뒤집을 수 있듯, 국민이 지도자를 엎을 수 있다는 뜻이다. '보수의 심장' 서문시장에서도 물결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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