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ADAS 방산전시회 현지 르포
국내 방산대기업, DX코리아 포기하고 수출 겨냥
"피치 블랙에 FA-50이 참가해 기체의 우수성, 안정성, 신뢰성을 직접 확인했다.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모두 갖춘 KF-21도 차기 사업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이리네오 에스피노 필리핀 국방부 선임 차관)
"발리카탄 훈련에서 ‘해성’의 실사격 훈련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보다 고사양의 ‘해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림팩 훈련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인도한 호위함들이 실제 작전에 투입돼 실전 능력을 검증했다."(토리비오 아다시 필리핀 해군사령관)
25일 필리핀 마닐라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막을 올린 ‘아시안방산안보전시회(ADAS) 2024’의 열기는 뜨거웠다. 최근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환경을 반영하는 듯했다. 특히 한국 업체들의 전시 부스를 찾은 필리핀 고위 군 당국자들은 끊임없이 K-방산의 만족스러운 후기를 전했다. ‘필리핀의 방산 한류’를 실감케 하는 장면이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ㆍ한화오션ㆍ한화시스템 등 한화그룹 방산3사(통합 부스 운영), LIG넥스원, HD현대중공업을 비롯해 장갑차 생산업체인 코비코, 소총 전문 기업 다산기공 등 6개의 한국 기업 부스가 마련됐다.
우리 정부와 군을 대표해 전시회를 찾은 이영수 공군 참모총장은 "필리핀 국방 차관과 공군 사령관 등 여러 관계자들을 만났고, 실제 FA-50을 운영하는 부대에 가서 조종사들과도 얘기를 나눴다"며 "한국 무기체계에 대한 신뢰성이 높다는 걸 피부로 느꼈고, 육ㆍ해ㆍ공군 모두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상당히 많다는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날 KAI 부스에서 필리핀 공군 참모총장, 강구영 KAI 사장과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K-방산에 대한 필리핀의 신뢰는 경험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3년부터 장장 15년에 걸쳐 군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필리핀은 K-방산의 ‘큰 손’이다. 필리핀은 2015년 KAI가 개발한 국내산 전투기 FA-50 12대 도입을 시작으로 2020년과 21년 HD현중으로부터 각각 호위함 1척을 인수했다. HD현중은 지금까지 필리핀으로부터 함정 10척을 수주했다. LIG넥스원 역시 대잠수함용 경어뢰 ‘청상어’를 시작으로 함대함 미사일 ‘해성’을 필리핀에 공급했다. 필리핀 공군과 해군의 핵심 전력이 K-방산으로 진용을 갖춘 셈이다. 그 결과,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원(SIPRI)이 올해 3월 발간한 ‘2023년도 세계 무기 수출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은 최근 5년간 K-방산 수출의 19%를 차지하며 폴란드(27%)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산 무기를 많이 수입한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필리핀은 2017년 이슬람 극단주의 반군과 펼친 마라위 전투와 다양한 훈련을 통해 K-방산의 우수성을 실감했다. 현재 진행 중인 3단계(2023~28년) 전력 증강 사업에서도 한국 기업들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갈등을 겪고 있는 필리핀은 3단계 사업에서 잠수함과 고사양 유도무기 등 해양 방어를 위한 첨단 무기 도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필리핀에 특화된 잠수함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한국 해군 최신예 잠수함인 장보고-III 배치-II를 기반으로 필리핀 작전 운용에 맞게 개량한 2,800톤급과 1,400톤급 잠수함을 주력으로 내세웠다. 2011년 인도네시아 수출에 이어 필리핀까지 정조준한 것. 필리핀 정부는 예산 부족으로 잠수함 도입 사업을 미루고 있으나, 이날 한화 부스를 찾은 필리핀 해군 고위 관계자는 "필리핀이 처한 현재의 안보 환경에서 잠수함은 비대칭전력으로써 획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사업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LIG넥스원은 필리핀 군이 ‘해성’을 통해 최초로 유도무기 실사격 명중의 쾌거를 이룬 만큼 해궁ㆍ신궁ㆍ천궁II 등 함대공ㆍ지대공 요격체계로 필리핀 수출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LIG넥스원은 26일 해성 실사격 훈련 성공을 축하하는 기념 동판을 제작해 필리핀 해군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다연장로켓(MLRS) ‘천무’를 앞세워 필리핀 시장의 문을 두드렸고, 전투체계 및 전술데이터링크를 수출한 바 있는 한화시스템은 무인수상정 ‘해령’과 해양 유ㆍ무인복합체계를 앞세워 필리핀 해군에게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KAI는 강 사장이 직접 현장을 이끌며 FA-50 추가 수출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필리핀 공군은 장기적으로 FA-50 24대의 구매 소요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FA-50은 말라위 전투에서의 활약과 지난달 호주에서 진행된 연합공중훈련 ‘피치 블랙’에서 경쟁사인 스웨덴 사브의 4.5세대 전투기 JAS-39 ‘그리펜’과 도그파이트(전투기 간 근접전)를 펼쳐 완승을 거두면서 필리핀 내 위상은 최고조에 달한 상황. 이에 힘입어 향후 진행될 다목적 전투기 사업에서도 KF-21이 그리펜과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필리핀에서의 ‘방산 한류’는 동남아로 그 영역을 넓혀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행사장에는 필리핀뿐만 아니라 태국, 캄보디아 등 다양한 동남아 국가의 각 군 장성들이 한국 기업의 부스를 찾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주원호 HD현중 특수선사업대표 부사장은 "함정 건조부터 유지보수(MRO)를 아우르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이룩한 필리핀을 발판으로 동남아 지역 함정 수주 확대, 나아가 함정수출 세계화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마닐라(필리핀)=국방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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