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코인사기공화국-그들은 치밀했다>
①-⑴1·2심 확정 판결문 한달간 '전수조사'
각 재판부 심리 사기 피해금 합계, 2조7000억
'다단계 구조' 코인 범죄 극대화 시켜
"투자자·가해자·피해자 경계 뒤섞여"
"피고인 스스로도 처음엔 수익성 있는 사업이라고 속아 투자한 피해자다. 고령으로서 이 같은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다른) 피해자들의 투자를 받았을 수 있는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2021년 11월16일 전주지법 군산지원 판결)
"피고인은 총 8명의 피해자로부터 투자금을 지급받은 상위투자자다. 하지만 피고인도 (조직) 회장 등에게 속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2023년 6월14일 광주지법 판결)
우리나라 '가상자산(코인) 다단계' 형사 사건의 피고인 4명 중 1명은 조직이 내세운 수익구조를 믿고 투자에 나선 뒤 다른 신규 투자자를 끌어들여 형사 재판을 받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상은 뚜렷한 수익성이 없는 '돌려막기' 사업이었지만, 새로운 투자자를 끊임없이 양산해야 그 수익금이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되는 다단계 구조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특히 다단계 조직은 새로운 금융거래 영역으로 떠오른 코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코인에 대한 사회적 기대나 투기 심리가 커졌지만, 여전히 정보가 비대칭적이고 시스템이 불안정한 점을 악용한 것이다.
아시아경제는 한 달여간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에서 '코인'과 '다단계'를 중심 키워드로 2021년부터 최근까지 약 3년6개월 간 나온 1·2심 확정 판결문 162건을 전부 확보해 분석했다. 하급심 판결에서 중복된 내용을 제외하고 이 기간 각 재판부가 심리한 전체 피고인은 총 297명(법인 피고인 8곳 포함)이었고, 사기 피해금액의 합계는 약 2조7000억원에 달했다.
"피고인들도 투자자"…투자자·가해자·피해자 경계 뒤섞는 코인 다단계
코인 다단계 사건에 적용(다수 혐의일 경우 중복 표기)된 혐의는 크게 사기(102건), 유사수신행위법 위반(66건), 방문판매법 위반(65건) 등 3가지였다. 범행 규모 5억원 이상 시 더 무겁게 처벌되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죄가 적용된 경우는 7건이었다.
실제와 다르게 사업 구조를 설명하고 투자금을 가져갔다면 사기죄로, 특정경제법상 사기죄를 포함한 전체 '사기 범행' 규모는 2조6698억4989만4999원으로 집계됐다. 금융사가 아닌 곳에서 원금이나 고수익을 보장하며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피해를 유발하면 유사수신 행위로 판단하는데, 전체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죄 범행' 규모는 총 2조7504억3942만7107원이었다. '방문판매법 위반죄 범행' 규모는 총 2조7416억8272만1500원이었다. 가입 단계가 3단계 이상이고, 상위 가입자가 하위 가입자를 모집해 추천수당을 받는 다단계 조직에서 실제 물품을 거래하지 않고 투자금 명목의 돈만 주고받으면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
분석 결과 전체 피고인 중 69명(24%)은 다단계 조직에 본인의 돈을 직접 투입한 투자자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순위 투자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 않으면 기존 투자자도 돈을 받을 수 없는 구조인 만큼, 조직은 새로운 투자자를 데려올 것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투자피해를 직접 언급하지 않을 경우를 고려하면, 코인 다단계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 다단계 조직의 전북 군산지점 팀장으로 활동한 A씨는 "인공지능(AI) 로봇을 이용한 코인 되팔기로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피해자 3명으로부터 3억750만원의 투자금을 모집해 사기죄로 2021년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수익 지표라는 포인트는 사실 숫자에 불과했고, 사업은 사실상 돌려막기 구조였기 때문이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도 돈을 투자하다가 팀장의 지위에 오르게 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며 "피해자들의 투자금 일부는 수익금 명목으로 돌려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짚었다.
또 다른 다단계 조직의 상위사업자인 B씨 등 9명은 약 4년에 걸친 장기간 심리 끝에 2022년 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조직 총책은 "아이슬란드 등 해외에서 비트코인 채굴사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고, B씨 등은 각자 서울, 경기, 인천, 대전, 광주, 부산, 제주도를 돌며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1762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끌어들였다. 검찰은 이를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판단했는데, 재판부는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들도 투자자로서 제한된 정보만 받고 있었다"며 "하위 투자자들이 투자한 비트코인으로 자신들의 수당을 지급받는 '폰지 사기' 집단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보상도 어려웠다. 40개 사건에서 244명의 피해자가 배상명령을 신청했지만, 재판부가 인용한 경우는 불과 4명(1.6%)에 그쳤다. 배상명령 제도는 피해자들이 별도의 민사소송 없이 형사재판의 유죄 피고인으로부터 신속하게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하지만 코인 다단계 사건은 대규모 인원이 참여하고 투자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각 재판부는 "배상책임의 범위가 명백하지 않다", "신청금액이 (검찰이 주장하는) 피해금액과 일치하지 않는다", "수당을 지급받거나 일부 코인을 매도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 셋중 하나, '피해자 허황된 욕심' 함께 지적
"피고인들의 범죄행위가 사건의 주된 원인이지만, 피해자들의 수익 욕심도 일부 원인이 된다."(2021년 11월24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판결)
"피해자들로서도 투자의 사업성과 수익성을 제대로 검토해보지 않은 채 단기간에 고수익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투자를 결정한 측면이 있다."(2022년 9월23일 수원지법 판결)
피해자들이 자신의 돈을 투입하면서도 사업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점을 언급한 판결도 다수 확인됐다. 전체 판결문 중 53건(32%)이 이 같은 피해자의 책임을 피고인의 유리한 양형요소로 판단한 것이다. 양형요소란 법원이 피고인에게 어느 정도의 형벌을 내릴지 고려할 때 적용하는 조건을 말한다. 피해자가 고수익을 좇아 감행한 무리한 투자가 다른 범행 및 피해 확대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취지다.
형량은 어땠을까. 전체 피고인(하급심 중복 제외) 297명 중 집행유예를 포함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총 226명(76%)이었다. 전체 피고인 중 20명(6%)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벌금형은 징역형을 함께 받은 경우를 포함해 총 56명에게 선고됐다. 징역형만 놓고 보면 88명(39%)이 실형을 선고받았고, 138명(61%)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징역형 피고인 중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는 '3년 초과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24명(11%), 3년 이하 징역형은 202명(89%)이었다.
분석 대상 기간 중 가장 무거운 형량을 받은 피고인은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방문판매법 위반,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브이글로벌' 사건의 이모 대표였다. 이는 2020~2021년 '거래소 회원가입'을 조건으로 수백만원짜리 계좌를 개설하도록 돌려막기 다단계 구조를 만들어, 2조2500억원가량의 투자금을 끌어모은 혐의로 운영진이 기소된 사건이었다. 약 9개월 만에 피해회원 약 5만2900명을 양산한 대규모 범죄였다.
2022년 9월22일 수원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의 징역 22년보다 무거운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운영진 3명은 1심처럼 징역 4∼1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어렵게 모은 노후자금, 퇴직금 등이나 대출을 받아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입어 상당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들이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이 매우 무겁고 비난가능성 또한 대단히 높다"고 질책했다.
피고인 중에선 과거 다단계 등 유사한 수법의 범행으로 처벌받았다가, 코인이 사회적 관심을 받자 이를 활용해 다시 범행을 저지른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과가 확인된 피고인은 총 40명으로 전체 피고인의 13%였다. 여기서 피고인 3명은 '누범기간'(형 집행 종료·면제 후 3년)에 범행을 반복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1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죄 징역 1년을 선고받은 C씨는 과거에도 동종 범죄로 두차례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확인됐다. 그는 2017년 복역을 마치고 나온 지 3개월 만에 중국인이 만든 코인 채굴회사가 주도한 다단계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부산과 광주에서 '연계 거래소 계좌에 투자금을 넣으면, 구입 채굴기당 180~230%의 수익을 준다'는 취지로 투자자들로부터 11억1200만원을 끌어모았다. 재판부는 "누범기간 중 범죄를 또 저질러 죄책이 무겁다"며 "모집수당을 받으려고 사업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않은 채 투자자들을 모집해 큰 피해를 야기했다"고 말했다.
한편 167개 재판의 변호인단엔 총 360명의 변호인이 이름을 올렸다. 286명(79%)의 사선변호인과 74명(20%)의 국선변호인이 사건을 맡았다. 사선변호인 중 국내 10대 대형로펌 소속은 28명으로, 전체에서 7%였다. 장기간 코인 다단계 사건의 피고인들을 중점적으로 변호해 온 D 변호사의 화려한 실적도 확인됐다. 전체 피고인 중 40명(13%)이 그의 변호를 받았다. 특히 전체 무죄 피고인 중 70%인 14명이 D 변호사의 변호를 통해 무죄를 확정받았다.
<판결문,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판결에서 유죄로 인정된 공소사실의 범행 금액만 집계했습니다.
▲2021년 이후 '코인&다단계' 키워드로 검색된 확정 판결문은 총 204건이었지만, 코인이 다단계 범행 과정에 활용되지 않은 경우는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총 162건의 판결문에서 각 재판부의 판단 배경을 살펴보되, 1·2심 판결문이 함께 게재된 경우 심리한 범행 규모와 피고인 수 등 합계가 중복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사기,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별 범행 금액을 따로 산출했습니다.
<제보받습니다>
'가상자산 투자사기'에 대해 심층 취재 보도할 예정입니다. 코인 범죄 근절을 위한 종합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제보(lsa@asiae.co.kr)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특별취재팀> ▲팀장 이선애 부장 △김민영 차민영 김대현 황윤주 기자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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