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개편안 수립…주민투표·입법도
주민 동의해도 입법 안되면 '물거품'
절차 완료해도 '상생' 등 효과 고려야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곳곳에서 쏟아지는 가운데 실제로 몇 군데나 통합 혹은 분도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체제 개편에 이르기까지의 각 단계에서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고 비용까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지자체 차원의 개편 방안을 수립하면 지방의회 의결 혹은 주민투표를 거친 뒤 국회 입법까지 마쳐야 하는데, 이들 단계별로 지자체가 맞닥뜨려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주민 의견, 얼마나 반영할 것인가
행정체제 개편에서 주민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고 반영할 것인가는 항상 화두가 된다. 주민 동의 없는 체제 개편은 향후 지역 간 분열,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이유로 지자체들은 통합 등 체제 개편 논의에 앞서 주민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그동안 행정체제 개편이 추진되다 좌초한 사례들도 저조한 여론조사 결과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경남 사천·진주의 경우 2011년, 2012년 행정통합을 추진하며 여론조사를 실시했지만, 사천시민의 부정적 응답이 많아 무산됐다. 지난해 부산·경남 행정통합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반대 여론이 45.6%로 찬성(35.6%)보다 높게 나타나면서 추진 속도가 늦춰졌다.
행정구역의 변경은 주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론조사를 넘어 주민투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방자치법상 지자체를 폐지하거나, 설치하거나, 합칠 때는 지방의회 의결 '혹은' 주민투표를 거치도록 한다. 즉, 주민투표를 하는 것이 의무는 아닌 셈이다. 하혜영 입법조사처 행정안전팀장은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 재부상' 보고서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행정체제 개편 시 모두 주민투표를 실시해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지만, 광역단위에서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실현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지방의회 의결을 거칠 경우라도 주민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합리적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주민투표를 거치지 않고 빠르게 통합이 진행되면서 주민 갈등 등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도 있다. 마산·창원·진해 통합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행정체제 개편을 언급한 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0년 7월 마무리됐다. 주민투표는 거치지 않았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창원 통합은 주민투표가 아닌 지방의회 의결로 끝내다 보니 체계적인 논의가 부족했다"며 "그러다 보니 명칭 등 창원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마산·진해 쪽에서는 계속해서 불만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통합 여부가) 귀속되지는 않는다. 법 개정에 있어 참고 사례가 되는 것"이라며 "주민들도 각각 (주민투표를) 원하는 곳이 있고, 원하지 않는 지역도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 개편 관련법, 22대 국회서는 논의될까
주민 호응을 얻더라도 '법안 통과'가 되지 않으면 행정체제 개편은 물거품이 된다. 이 때문에 개원 2개월차인 22대 국회에서도 행정체제 개편 관련 법안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1일 기준 경기북도 분도와 관련 3개의 법안, 제주에 기초자치단체 설치 근거를 담은 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다. 대구·경북, 김포시는 올해 말까지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는 상임위에서 관련 법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21대 국회에 발의됐던 경기북도 관련 법안은 소위에 상정되기는 했지만 한 차례도 깊이 논의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김포의 서울 편입 내용을 담은 법안도 마찬가지다.
현재 행정체제 개편이 범정부적으로 탄력을 받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22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활발히 검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행안위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회기) 말미에 지자체에서 법안을 쏟아내서 논의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21대에는 (행정체제 개편에) 다소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몇 개 시·도에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법안 1소위원회가 다 구성되면 주요 논의 법안으로 심의가 이뤄질 것 같다"고 전했다.
개편이 끝은 아니다
절차상 개편이 마무리되더라도, 지방자치 역량 강화, 균형 발전, 지역 경쟁력 제고 등 실질적 목표 달성 여부가 더욱 중요하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하 교수는 "과거 행정통합 사례에서는 지방으로의 권한 이양을 통해 지역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방면의 고려가 부족했다"며 "그러다 보니 통합되고 나서도 '크게 좋아진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행정통합에 있어서는 지역 간 갈등 없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하 교수는 "청사 소재지를 어디에 두느냐로 그 지역이 앞으로 계속 발전할지 여부가 좌우된다"며 "청사 소재지, 지역 공공시설 등 재정 투자는 (상대적으로) 약한 지역에 배려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주·청원 통합 사례에서도 이러한 점을 반영했다.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청원을 고려해 두 지역은 통합 시 '상생발전방안'을 마련했다. ▲통합 후 12년간 전반기 시의회 의장 및 후반기 부의장을 청원군 출신 의원으로 선출 ▲신설 구청 2곳 청원군에 설치 ▲시내버스 요금 단일화 등이 상생안에 포함돼 있다. 청원청주 상생발전위원회가 이행 상황을 점검·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인구 위기에 직면한 지금, '생존'의 측면에서 통합을 이루는 것 자체가 큰 목표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은 일정 부분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고 지방은 소멸한다는 위기감에서 행정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통합 후) 부작용은 나타날 수 있지만, 통합하지 않아서 소멸하는 것보다는 낫다. 실보다는 득이 큰 논의일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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