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녹색 바나나를 금지합니다…직장인들 '애착 화분'으로 인기[베이징 다이어리]

시계아이콘01분 11초 소요
뉴스듣기 글자크기

중국인들의 말장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같은 발음을 이용해 미신이나 유행을 만들어 끼리끼리 즐기는 문화는 대륙에서 오랜 세월 성행하고 있다. 이를 해음(諧音) 문화라고도 한다. 중국 사람들이 복(福)자를 뒤집어 문에 붙이는 것도, 차 뒷범퍼에 도마뱀 모양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최근 제법 화제가 됐던 하나의 말장난은 바로 '녹색 바나나 금지'. 유희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돼 누군가에게 제법 쏠쏠한 수입을 가져다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녹색 바나나를 금지합니다…직장인들 '애착 화분'으로 인기[베이징 다이어리] 청년층의 사회적 불안에 착안해 녹색 바나나 사업을 시작한 1990년대생 린원하이씨. (사진 출처= 바이두)
AD
녹색 바나나를 금지합니다…직장인들 '애착 화분'으로 인기[베이징 다이어리] 녹색 바나나가 점차 노랗게 후숙되고 있는 과정을 네티즌들이 공유했다. (사진 출처= 웨이보)

익지 않아 떫은맛이 나는 녹색 바나나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일이 거의 없다. 이 과일이 최근 중국에서는 작은 화분이 돼 전국 직장인들의 책상 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대신 이 바나나 송이에는 작은 카드에 이렇게 적혀있다. '녹색 바나나 금지(禁止蕉綠)'. 귀찮은 후숙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 녹색 바나나의 가격은 5kg에 69.9위안(약 1만3290원)으로 잘 익은 노란 바나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녹색 바나나가 직장인들의 애착 화분이 된 사연은 이렇다. '녹색 바나나'를 의미하는 중국어 병음 '쟈오뤼(蕉綠)'는 '불안(焦慮)'과 발음이 같다. 녹색 바나나를 금지한다는 것은 고로 근심, 불안, 걱정을 금지한다는 의미가 된다. 녹색 바나나가 후숙 과정에서 노랗게 변하는 걸 바라보고, 이걸 하나하나 따먹으며 사회 초년생들은 회사에서 느끼는 초조함과 불안함을 해소한다. 어떤 사람은 바나나 하나하나에 잊고 싶은 걱정거리를 펜으로 적어두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바나나가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을 '갓 대학을 졸업한 나의 인생이 노련한 직장인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여긴다"고 진단했다.


다니던 공장을 관둔 뒤 이 사업을 시작해 한 달에 200만위안을 벌게 된 1990년대생 린원하이씨는 하루 주문량이 1만건에 달하며, 이제까지 300만송이 이상을 팔았다고 인터뷰했다. 현지 언론은 "(린 씨가) 빠르게 돌아가는 일과 생활 속에서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현대의 젊은 층들이 불안을 해소할 방법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린 씨의 성공 스토리는 다른 의미에서 젊은 층에 불안을 해소하는 계기로 인식되는 듯하다. 초유의 실업난(5월, 16~24세 14.7%)과 매년 1200만명을 웃도는 대학 졸업생이 쏟아져나오는 중국에서, 괜찮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있다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셈이다.



얼마 전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양질의 완전고용'을 강조하며, 일자리의 수요와 공급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 중국. 금지된 녹색 바나나의 치유 효과가 길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긍정해보려는 노력은 눈여겨볼 만하다.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