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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리스크 피하는 사회와 자본시장의 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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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맹주 獨 시총, 애플보다 못해
리스크 감내하는 자본시장 구조가
미국·유럽 경제성장률 격차로 나타나

[논단]리스크 피하는 사회와 자본시장의 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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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Risk)’란 단어의 이미지를 한번 떠올려 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위험’ ‘손실’ ‘투기’ 등을 떠올릴 것이다. 더욱이 한 번이라도 주식에 투자했다 크게 덴 사람이라면 그 부정적 이미지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그런데 리스크의 원뜻은 이런 표상들과는 다르다. 리스크는 ‘뱃심 있게 도전하다(to dare)’라는 의미를 지닌 이탈리아어 ‘risicare’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원 자체에 ‘도전’과 ‘선택’의 뜻이 들어 있다. 인류의 리스크 역사를 분석한 투자 이론의 대가 피터 번스타인은 저서 ‘리스크’에서 “리스크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적고 있다. 리스크란 단어에는 ‘선택적이고 적극적인 인간 행동’이란 의미가 내재화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경제 격차에 대한 분석과 언론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1993년 유럽연합(EU)이 출범할 때, 미국을 견제할 새로운 힘이 등장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중국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 논리를 앞세워 오랜 잠에서 깨어날 때, 미국의 경제 패권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붕괴 후 미국 중심의 글로벌 경제 질서가 미국·중국·EU의 다극화 체제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EU의 맹주인 독일은 경기 침체에 신음하고, 용틀임하던 중국은 코로나19 이후 비틀거리고 있다.


반면 미국은 AI 등 혁신을 주도하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인다. 경제의 온도계인 주식시장을 보면, 이런 현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럽의 3인방(영국, 프랑스, 독일)의 주식시장 전체를 합쳐도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의 20%도 안 된다. 심지어 독일은 애플 한 종목보다도 못하다. 시가총액이 경제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번에는 경제성장률을 보자. 미국과 유럽의 격차는 지난 10여년간 더 벌어졌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6조8600억 달러로 2012년(16조2540억 달러) 대비 1.6배로 성장했다. 유럽의 GDP는 지난해 15조700억달러로 2012년(14조6501억달러)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유럽 경제는 지난 10여 년 동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게걸음 한 셈이다.

미국과 유럽의 격차를 설명하는 여러 분석 중 하나가 자본시장 문제이다. 미국은 스타트업부터 기존 상장기업까지 자본시장을 통해 투자자와 기업이 리스크를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연금 자산도 대부분 주식과 같은 리스크 자산으로 채워져 있다. 반면 유럽은 투자가 아닌 대출 중심이다. 투자의 세계관과 대출의 세계관은 다르다. 대출은 리스크 회피를 기본으로 한다. 돈을 떼이느냐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그 때문에 담보를 요구하고 신용 상태를 꼼꼼히 따진다. 담보나 신용은 과거의 유산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자산을 뜻한다. 투자의 세계관은 다르다. 투자는 미래를 향한다. 미래 가능성에 베팅한다. 투자자와 기업이 함께 리스크를 공유하고 미래를 만드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미국과 유럽, 그 어느 쪽에 가까울까. 아직은 유럽 쪽에 가까운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은행 중심, 대출 중심의 시스템이 더 강하다. 물론 모든 시스템을 자본시장 위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본시장의 야성을 살리지 않고서는 미래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은 유럽과 미국의 격차가 보여주고 있는 명백한 현실이다. 일본이 밸류업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시장의 야성을 살리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본시장의 야성을 살려야 혁신도 가속화된다. 금융이 투자를 통해 혁신을 위한 밑천을 대 주어야 한다. 연금도 지금처럼 원리금 위주로 운영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나라도 리스크를 회피하는 사회를 넘어 리스크를 권하고 관리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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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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