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이끌었던 검찰이 야당에 여권 정치인들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검사장(대구고검 차장검사)이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옥곤)는 전날 열린 손 검사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 사건의 선고공판에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형사절차전자화법 위반 혐의 유죄를 인정, 손 검사장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미 증거들이 충분히 확보돼 있고, 손 검사장에게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등 이유로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서 고발장 작성·검토를 비롯해 고발장 내용의 바탕이 된 수사 정보 생성·수집에 관여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라며 "고발장이 당시 검찰을 공격하던 여권 인사 등을 피고발인으로 삼았던 만큼 피고인에게 고발이 이뤄지도록 할 동기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검사가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검찰권을 남용하는 과정에서 수반된 것"이라며 "피고인은 당시 여권 정치인·언론인을 고발하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기에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도 무겁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손 검사장은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후보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공모해 ▲2020년 4월 3일 '채널A 사건'의 제보자인 지모씨와 최강욱, 황희석, 유시민 등 당시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과 관련 자료를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이었던 조성은씨에게 전달한 혐의(1차 고발장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2020년 4월 8일 같은 방법으로 최강욱에 대한 고발장을 조씨에게 전달한 혐의(2차 고발장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김 의원에게 1차 고발장과 관련 자료를 전송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김 의원에게 2차 고발장을 전송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2020년 4월 3일 지씨에 대한 실명 판결문을 김 의원에게 전송해 업무상·직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한 개인정보보보법 위반 혐의 ▲2020년 4월 3일 지씨에 대한 실명 판결문을 김 의원에게 전송해 업무상·직무상 알게 된 형사사법정보를 누설한 형사절차전자화법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죄명으로 정리하면 선거에 영향을 줄 의도로 1, 2차 고발장을 김 의원을 통해 조씨에게 전달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 2차 고발장 전송에 따른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그리고 지씨의 실명 판결문을 김 의원에게 전송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형사절차전자화법 위반 혐의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없었다 판단
손 검사장은 고발장을 작성하거나 전송한 사실 자체를 부정했지만, 재판부는 텔레그램 메시지 기록, 손 검사장과 함께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근무하던 후배 검사들의 판결문 조회 기록과 법률신문이 관리하는 한국법조인대관 접속 기록 등 증거를 토대로 손 검사장으로부터 김 의원에게 1, 2차 고발장과 관련 자료, 지씨의 실명 판결문이 건네졌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수처가 손 검사장이 김 의원과 공모해 저질렀다고 판단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먼저 재판부는 조씨의 지위와 관련 "조씨가 당시 고발장 작성에 관여한 사람이 검찰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검찰 구성원이 반드시 손 검사장이라는 점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공직선거법 위반 범행에 암묵적, 순차적으로 가담할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라며 "설령 김 의원에게 조씨와 범행을 공모한다는 의사가 없었더라도 조씨는 그 범행에 대해 최소한 편면적인 방조를 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공소사실에 기재된 피고인과 김 의원이 고발장 등을 조씨에게 전달한 행위는 공모자들 사이나 공모자와 이를 방조한 사람 사이의 내부 전달에 불과해 공직선거법 위반 범행의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가 포함된다고 보기는 하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를 가지고 한 행위가 전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라며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되면 고발할 수 있고, 피고발인이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라고 하여도 고발할 수 없는 것은 아니므로 정치인에 대한 고발장 초안의 작성 및 전달 자체만으로는 선거과정 또는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유형적이고 객관적인 상황 또는 표지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각 고발장은 선거일 전까지 수사기관에 접수되지 않았고, 고발장과 관련해 언론 보도가 됐다는 등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칠만한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조씨가 각 고발장을 미래통합당의 다른 선대위 관계자에게 전달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고, 설령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미래통합당에서 이를 토대로 선거 전략을 수집하는 등 선거에 활용된 사정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사정에 따르면, 비록 조씨가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으로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기는 했지만, 조씨에게 고발장이 전달된 사실만으로는 제21대 국회의원선거의 선거과정 또는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려 또는 위험이 발생했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라며 "따라서 조씨의 지위를 떠나, 공소사실에 기재된 조씨에게 고발장 등을 전달한 행위만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기수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손 검사장에게 적용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미수나 예비·음모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이 사건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김 의원과 공모해 이 사건 각 텔레그램 메시지를 조씨에게 전달한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수 있기는 하나, 그 행위만으로는 공직선거법위반의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기 어렵거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의 기수에 이르렀다고 인정할 수 없고, 이 부분 각 공직선거법위반에 관한 미수범이나 예비, 음모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피고인에게 이 부분 각 공직선거법위반의 죄책을 물을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지모씨 실명 판결문, 지씨 관련 텔레그램 메시지 유죄
두 건의 고발장 전송과 관련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2020년 4월 3일 손 검사장이 1차 고발장과 함께 전송한 관련 자료와 텔레그램 메시지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한 반면, 같은 해 4월 8일 전송한 2차 고발장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유무죄 판단이 갈린 건 고발장이나 관련 자료에 담긴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먼저 재판부는 1차 고발장에 담긴 내용 중 '서울남부지검 검사들이 지씨를 이용해 위법한 수사를 했다는 것은 허위사실이다', '한동훈 검사장은 채널A 기자를 시켜 이철에게 유시민 이사장의 비리를 진술하라고 설득한 사실이 없었고, 지씨는 한동훈 검사장의 음성녹음을 청취한 사실도 없었다'는 등 내용에 대해 "이 사건 당시 그 내용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가 없어 그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구체적인 정보라기보다는 작성자의 주관적인 의견, 주장, 평가에 불과한 것으로서 비밀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반면 재판부는 1차 고발장을 전송한 날 손 검사장이 함께 텔레그램으로 보낸 지씨의 실명 판결문에 담긴 지씨의 주민등록번호 등 세부적인 인적사항이나 구체적인 범죄사실 등은 비공지성과 보호필요성 등 공무상 비밀누설죄 성립에 필요한 요건을 갖춘 비밀이라고 판단했다. 또 손 검사장이 직접 입력해 전송한 '제보자X가 지OO임'이라는 메시지 내용도 비밀로 봤다. 아직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아 명확하진 않지만 1차 고발장 내용 중 지씨의 신상 개인정보 등에 관한 부분은 공무상 비밀누설죄 유죄가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형법 제127조의 공무상 비밀은 ▲직무관련성 ▲비공지성 ▲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국가의 기능이 침해받을 위험이 발생할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경우 충족되는 '보호필요성'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재판부는 '보호필요성' 요건과 관련 "이 사건 당시는 채널A 사건에 대한 검찰의 정식 감찰 또는 수사가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제보자X의 단순한 과거 제보 전력 등 행적을 넘어 그 제보자X가 '지OO'이라는 사실 및 법원, 검찰 등 국가기관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는 실명 판결문에 기재된 각종 인적사항 정보가 외부에 널리 알려진다면 지씨의 입장에서는 심리적으로 충분히 위축될 수 있고, 향후 진행될 채널A 사건의 감찰 또는 수사 과정에서 정식 제보 진술을 할지 여부 등을 결정하는 의사형성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이로 인해 검찰의 채널A 사건에 대한 감찰 조사 또는 수사의 원활한 진행에도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재판부는 2차 고발장에 담긴 내용은 직무상 비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 공무상 비밀누설죄 성립을 부정했다.
먼저 재판부는 "'피고발인(최강욱)은 조국 전 장관의 아들에 대한 허위 인턴확인서를 작성한 사실이 있으므로, 위 유튜브 인터뷰 내용은 허위사실이다'는 내용 등은 모두 작성자의 의견, 주장에 불과해 그 자체로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피고발인 최강욱의 지위, 정경심의 아들 조모씨에 대한 허위 인턴확인서 작성 관련해 불구속 기소됐다는 사실,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허위 인턴확인서를 작성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은 모두 비밀성 판단의 대상인 정보에 해당한다"라면서도 "2차 고발장에 담겨 있는 정보들은 모두 언론 보도 또는 피고발인이 직접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일반에 공지된 사실이고, 그 정보들이 외부로 알려진다고 해서 검찰의 수사기능이 침해될 어떤 우려나 위험이 생긴다고 볼 수 없어 2차 고발장에 담겨 있는 정보 중 직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개인정보보호법·형사절차전자화법 위반 혐의… 지씨 판결문 '누설' 인정
재판부는 손 검사장이 2020년 4월 3일 지씨의 실명 판결문 사진을 김 의원에게 전송해 업무상, 직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와 형사사법정보를 누설한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씨에 대한 실명 판결문 속 정보가 개인정보에 해당함은 명백하고, 완전한 실명 판결문은 법원, 검찰 등 형사사법업무 처리기관이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는 것이므로 형사사법정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의 직책이었던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은 수사정보의 수집,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이고, 수사정보에 개인정보가 포함될 수 있음은 명백하다"라며 "피고인은 이 사건 당시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 있고, 당연히 형사사법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지씨에 대한 실명 판결문은 피고인이 수사정보정책관의 지위 내지 자격에서 업무상, 직무상 알게 된 정보에 해당한다"라며 "수사정보정책관은 수사정보의 수집, 관리 등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이고, 정책관실 소속 구성원이 수사정보 수집을 위해 수시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을 통한 판결문 검색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피고인이 직접 판결문 검색을 한 사실이 없더라도 피고인의 직책상 업무에 판결문 검색 업무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피고인으로부터 지씨의 실명 판결문을 전송받은 상대방은 그 정보를 모르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이 개인정보 및 형사사법정보를 '누설'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죄수와 관련 재판부는 손 검사장의 개인정보보호법위반죄와 형사절차전자화법위반죄의 관계를 상상적 경합(하나의 행위가 여러개의 죄에 해당될 때 가장 무거운 죄로 처벌)으로 본 반면, 이들 죄와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관계는 실체적 경합(법정형이 가장 중한 죄에 정한 형을 가중해서 처벌)으로 파악했다.
공수처 기소 사건 중 첫 유죄 판결… 손 검사장 "항소할 것"
앞서 공수처는 언론보도를 통해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수사에 착수해 문제의 고발장과 판결문이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손 검사장→김웅 의원→제보자 조성은씨 순서로 전달된 것을 확인했다며 8개월의 수사 끝에 지난해 5월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형사절차전자화법 위반 등 4개 혐의를 적용해 손 검사장을 재판에 넘겼다. 공수처는 애초 손 검사장에 대해 직권남용 혐의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수사했지만, 결국 공소사실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한편 공수처는 당시 민간인 신분이었던 김 의원의 직권남용 및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는 무혐의 처분하고, 손 검사와 공모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 공수처의 기소 혹은 수사 대상이 아닌 나머지 혐의 부분은 검찰로 이첩했다. 또 사건 발생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도 피의자로 입건했지만 결국 무혐의 처분했다.
수사 과정에서 공수처는 두 차례나 손 검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등 이유로 기각되며 공수처의 무리한 수사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11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손 검사장에게 공직선거법상 분리선고 규정에 따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징역 3년을, 공무상 비밀누설 등 나머지 혐의에 징역 2년을 각각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번 사건은 공수처가 기소한 사건 중 처음으로 유죄 판결이 난 사건이다.
공수처는 전날 선고 직후 "판결문을 받는 대로 내용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손 검사장은 법정을 빠져나가며 "사실관계, 법률관계 모두 수긍할 수 없다"라며 "항소해서 다투겠다"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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