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아래층에 사는 70대 여성을 살해한 후 방화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모씨(40)에 대해 사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20일 오전 10시50분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당우증)의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검찰이 정씨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아무 잘못 없는 피해자는 고통 속에 생명을 빼앗기고 유족은 평생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거나 피해 배상, 위로를 위한 아무런 조치가 없다"며 "죄질이 매우 불량하며 다수의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구형이유를 밝혔다. 유족들은 숨죽여 울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6월14일 오후 8시께 다세대 주택 아래층 거주자인 70대 여성 A씨를 살해하고 불을 지른 혐의(살인, 현주건조물방화)로 구속기소됐다. 도피자금으로 쓰기 위해 A씨의 돈을 훔치기도 했다. 정씨는 범행 4일 후인 6월18일 오전 12시22분께 서울 강북구 한 모텔에서 체포됐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층간 누수 문제로 다툼이 있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다만 검찰은 지난해 12월께 층간 누수가 발생한 후 정씨가 A씨에게 앙심을 품었고 지난 6월 임대차 계약 만료 예정으로 더 이상 주거가 어려워지자 증오심에 사로잡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봤다. 검찰은 "2019년 6월 정씨가 세탁기를 설치하면서 아래층 A씨의 집에 누수가 발생한 이후 2년동안 A씨가 정씨에게 직접 문제제기 한 사실이 없고 지난해 12월 누수 발생 이후부터 사건 당일까지 어떤 분쟁도 없었다"며 "자신의 처지가 마치 피해자 때문이라는 착각에 빠져 범행이 일어났다"고 했다.
구형에 앞서 피해자 변호인은 "개인의 사적 복수가 금지된 상황에서 피고인을 벌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법원의 판결뿐이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엄벌을 내려줄 것을 호소했다. 피해자 측은 피고인의 사형을 요구하는 시민 3300여명의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앞서 유족 측도 정씨를 사형 또는 무기징역과 같은 엄벌에 처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정씨 측은 "피고인도 재판부나 유가족에게 선처를 구할 수 있는 궤를 벗어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어 수사단계에서부터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면서도 계획범죄가 아닌 점,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점을 고려해달라고 했다.
정씨는 최후진술에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죄송하다는 말뿐"이라며 "따로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법원에서 판결해주는 대로 무거운 선고를 받더라도 달게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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