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이 길어질 것이란 전망에 달러 가치가 치솟으면서 원화와 채권, 주가가 동반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 경기 회복이 여전히 더딘 가운데, 환율과 국고채 금리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 향후 기업·가계의 자금 조달 비용을 대폭 높일 뿐 아니라 수출과 물가, 내수 등 경기 전반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환율 연고점, 코스피 하락…美 긴축에 속수무책
4일 금융·외환시장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국내 주식시장과 서울 외환시장이 문을 닫은 사이 달러 가치는 연고점을 경신하고, 미 국채 금리도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국내 경제 부담이 더욱 커지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7선을 돌파해 '달러 독주'를 이어갔고, 세계 채권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연 4.8%를 넘으며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Fed의 긴축 통화정책과 강달러는 국내 경제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중이다. 이날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0.7원 급등한 1360원에 개장한 뒤 장중 1361.7원까지 오르며 1거래일 만에 연고점을 갈아치웠다. 시장에선 국제유가 상승과 아시아 통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370~138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달러인덱스가 108선까지 돌파한다면 지난해 말처럼 환율이 1400원 안팎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
국내 증시도 약세다. 이날 오전 코스피는 전장보다 2% 이상 하락해 2410대에서 등락 중이고, 코스닥도 3% 가까이 내려 810대에서 힘을 못 쓰고 있다. 국내 국고채 금리 역시 미국 국채 금리의 영향을 받는 만큼 상승 압력이 커질 전망이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하락한다.
한은 "각별한 경계감…필요시 시장 안정화 조치"
한국은행은 미국 상황이 심상치 않자 이날 오전 유상대 부총재 주재로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했다. 유 부총재는 이날 회의에서 "최근 미 Fed의 고금리 기조 장기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채권 금리가 상당폭 상승하고 있다"며 "국내 금융·외환시장도 이런 대외 여건의 변화에 따라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국내 가격변수 및 자본 유출입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시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은까지 나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언급한 것은 그만큼 강달러로 인한 원화, 주가, 채권의 트리플 약세 현상이 심하기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금융시장은 이미 트리플 약세"라며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발 '긴축 발작' 리스크가 현실화 혹은 확산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미국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 시에는 긴축 발작 리스크가 가시화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긴축 발작은 미국의 긴축으로 주변국의 통화 가치와 증시가 급락하는 사태를 의미한다. 2013년 5월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경기 회복 국면이 뚜렷해지자 양적 완화를 중단하겠다고 시사하면서 글로벌 금융 시장이 긴축 발작을 겪은 것이 대표적이다. 2013년에는 미국의 기준금리가 연 0%대로 낮았고, 지금은 5.5%로 높기 때문에 상황이 동일하진 않지만 최근 국제유가 급등과 중국 경기 부진 악재까지 겹친 것을 고려하면 긴축 발작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계·기업 '돈맥경화' 우려…고금리 계속된다
미국 긴축 기조가 당분간 꺾이기 힘들다는 전망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보탠다. 지난주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 우려로 Fed 긴축 기조가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으나,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극적으로 임시 예산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면서 Fed의 긴축을 제약할 요인도 사라졌다. 여기에 미국 9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로 시장 예상치(47.7)를 웃돌았고,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고위 인사들이 잇따라 물가 안정을 언급하면서 긴축 장기화 기대는 더욱 강해지는 모습이다.
강달러와 국채금리가 상승세가 계속되면 국내 국고채 금리와 함께 대출 금리도 올라 가계와 기업의 '돈맥경화'가 심해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선 국고채, 회사채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커져 수익성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장기존속 한계기업'의 금융기관 차입금이 50조원에 달하기 때문에 향후 부채가 많고 신용도가 낮은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가 커지며 금융회사로까지 부담이 확산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가 108.1%로 세계에서 가장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가계도 고금리에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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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금리가 지속되면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금융 부실이 늘고, 경기침체를 앞당겨 주가가 대폭 하락할 수도 있다"며 "미국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이미 연초부터 고금리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었지만 월가가 너무 긍정적으로 상황을 내다보다가, 이제야 전망이 수정되면서 충격이 더 커졌다"고 설명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 지속과 이에 따른 고금리 장기화 전망 등으로 국채시장에서 구조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증시에도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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