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증시 짚어보기 <하>
올 4·6월 지분 확대 증시 견인
에너지·원자재 사업 등서 수익 창출
'저평가 된 기업' 투자 버핏 철학에 적합
에너지 가격따라 주가 크게 좌우 전망 속
재생 에너지·구리 등 사업 다각화 시도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일본 투자 소식은 일 증시 부활의 신호탄이 됐다. 지난 4월 버핏이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확대했다는 소식에 해당 기업 주가가 폭등, 증시 상승세를 견인한 것이다. 일본의 대표 지수인 니케이225는 33년 만에 심리적 저지선인 3만 3000선을 돌파하는 등 이른바 ‘버핏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시장의 이목도 버핏이 적극 투자한 5대 상사에 쏠리고 있다. 가치주 중심의 장기투자를 선호하는 버핏의 투자철학상 해당 기업의 장기 성장이 보장된 것이란 낙관론이 번지는 가운데 일각에선 경기 순환주인 종합상사 특성상 버핏 효과 없이 주가 상승세가 유지될 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버핏, 4월 지분 늘린 후 평균 주가 56.25% 상승
버핏이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 매입을 처음 발표한 시점은 2020년 8월이다. 버핏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당시 이토추 상사와 미쓰시비 상사, 마루베니 상사, 미쓰이 물산, 스미토모 상사 등 5대 상사의 지분을 5% 이상 매입했다. 이후 이듬해 11월 지분을 6%대로 늘린 이후 올해 4월과 6월 두차례에 걸쳐 주식을 추가 매수해 지분을 평균 8.5% 이상으로 늘렸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난 6월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이토추의 지분은 기존 6.21%에서 7.47%로, 스미토모는 6.57%에서 7.47%로 확대했다. 미쓰이물산과 마루베니의 지분은 각각 6.62%에서 8.99%로, 6.75%에서 8.3%로 늘렸다.
공격적인 지분 확대에 나선 결과 버핏의 투자 성적표는 양호한 성과를 기록했다. 지분을 7% 대로 늘린 사실이 보도된 지난 4월 11일 이후로 5개월 사이에 5대 상사의 주가가 평균 39.18%가 뛰었다. 같은 기간 니케이225 지수 상승률(18.15%)의 두배를 넘는다.
기업별로 보면 미쓰비시는 이날 기준 7583엔에 장 마감을 해 해당 시점 대비 주가 56.25%가 뛰었다. 5711엔으로 거래를 마친 이토추는 35.88%, 2830엔에 장 마감을 한 스미토모는 주가가 30.71% 상승했다. 미쓰이와 마루베니는 각각 5653엔, 2473엔에 거래를 마치면서 각각 주가가 39.31%, 33.75%가 올랐다.
5대 상사의 주가 상승 요인으로는 버핏의 투자 소식과 함께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이 꼽힌다. 미쓰비시는 지난 6월 3000억엔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이토추를 비롯한 4곳의 상사는 2023 회계연도(2023년 4월1일~2024년 3월31일)에 배당 성향 목표를 최소 30%에서 최대 35% 수준으로 내걸었다.
국제 원자재 가격 폭락에도 2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선방했다는 점 또한 주가 상승을 견인했다. 5대 상사의 핵심 사업 포트폴리오는 천연가스와 석유, 광물 등 원자재와 에너지 분야에 치중돼 있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5곳 모두 순이익이 전년 대비 7~30% 감소했지만, 편의점과 식품 등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로 원자재 가격 하락을 방어하며 시장의 예상보다는 높은 수익을 달성했다.
5대 상사, 버핏 투자 원칙에 부합…저평가된 주식
버핏은 일찌감치 5대 상사의 투자 가치를 알아차렸다. 경쟁력 있지만 저평가된 기업을 싼 값에 사는 버핏의 투자 철학에 정확히 부합하는 기업들이었다.
우선 잘 아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원칙에 맞아떨어졌다. 버핏은 5대 상사의 사업 구조가 버크셔 해서웨이와 유사하다는 점에 집중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최근 ‘코브 포인트 LNG’ 등 미국 에너지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는데, 5대 상사 또한 원자재와 에너지 사업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창출한다. 마루베니의 경우 매출의 90% 이상이 금속과 에너지 화학 분야에서 나온다. 나머지 4곳의 회사들도 원자재 사업에서 30~40%의 수익을 창출한다. 5대 상사가 에너지 사업에만 집중하지 않고 편의점, 식품 사업 등 수익구조를 다각화했다는 점도 여러 업종에 투자하는 대형 지주사인 버크셔와 유사한 점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버핏은 5대 상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기업이 설립된 지 100년이 넘어 경영 능력을 입증했고 IT 및 의료, 우주항공분야 등 다양한 산업에 진출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봤다.
기업가치가 저평가됐다는 것도 버핏이 5대 상사에 매력을 느낀 이유 중 하나다. 일본 기업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12~13배 수준인데 5대 종합상사는 6~7배 수준에 불과하다. 주가가 한 주당 몇 배로 매매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이토추(1.2배)를 제외한 4곳 모두 1배를 하회한다. 이에 더해 버핏은 일본의 금리가 낮다는 점을 이용,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해 저렵한 차입비용으로 투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경기 변동 민감해 우려" vs "사업 다각화로 수익 창출 기대"
일각에서는 버핏 효과가 사라질 경우 5대 상사의 주가 고공행진이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들 기업의 수익에서 에너지와 원자재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향후 에너지 가격 추세에 따라 주가가 크게 좌우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과거에도 5대 상사는 2000년대 자원 개발 사업 붐에 힘입어 실적 호조세를 지속하다가 2010년대 중반 들어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적게는 수백억엔대, 많게는 수천억엔대에 이르는 손실을 냈다. 2016 회계연도에 미쓰비시는 창립 이래 사상 처음 1500억엔 규모의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우려에도 향후 5년간 5대 상사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원 개발 산업의 거품이 터진 이후 이들 기업이 적극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의 경우 주력 사업인 광물 분야를 친환경에 접목하는 식의 투자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전기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재생에너지와 수소 등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구리 사업 강화에 나섰다. 미쓰이 물산은 기계 분야에서 올해 2400억엔의 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헬스케어 사업을 중장기 사업전략으로 내걸고, 아시아 최대 민간 병원 그룹인 IHH 지분 18%를 취득했다. 미쓰비시 상사는 연어양식 사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마루베니는 미국 2위 농자재 판매업체인 헬레나에 투자했다. 이토추는 자회사인 편의점 패밀리마트가 순조롭게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생활 소비 산업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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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잡지 다이아몬드는 "종합상사의 강점은 전 세계를 둘러싼 촘촘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수익 증가가 예상되는 분야에 경영자원을 재분배하며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굳이 과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사업 분야를 찾아 수익화에 성공하는지 여부"라며 "이에 따라 주가가 달라질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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