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행복한 이유는 삶의 덧없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비록 어린 시절처럼 굴러가는 낙엽을 보고 꺄르르 웃지는 못하지만,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순환이 가져다주는 작은 변화를 감지하고 감사해할 줄 알게 된다. 봄이면 돋아나는 새싹에 감사하고, 여름이면 초록 잎사귀의 싱그러움이 고마우며, 가을이면 새빨간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겨울이면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송이의 순수함에 반하게 된다. 돈이나 명예 혹은 나만이 옳다는 독선과 아집은 삶의 유한함 앞에서,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가뭇없이 녹아 사라진다. 그저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만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얼마 전 라디오 생방송에서 받은 청취자의 문자 하나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어서, 휴대전화에 적어놓고 수시로 꺼내본다.
"저는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지으며 살아요. 귤이 녹색이면 여름이고, 녹색에 황색이 섞이면 가을입니다. 샛노란 귤을 보고 있노라면 겨울이 왔음을 알 수 있고, 귤꽃 향기가 코를 찌르면, 봄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된답니다."
자연의 변화로 계절을 느끼고 있다는 단순하고 짧은 문자였지만, 가슴에 애틋하게 남는 글이다. 저 문자를 보낸 애청자는 장자가 이야기하는 소요유(逍遙遊)를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하늘이 선물한 하루하루를 즐기며, 소풍 나온 듯 유쾌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나이를 먹어 행복한 이유는 비록 마음도 몸도 굳어가지만, 삶이 소풍이라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비록 어깨는 욱신거리지만 아침에 일어나 샤워할 때면 따뜻한 물이 온몸을 적실 때마다 기묘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마시는 커피 한 잔의 향기가 그 행복감을 배가시킨다. 젊은 시절 누리던 강렬한 행복감은 사라졌지만, 조금씩 자주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왠지 모르겠지만 별것 아닌 것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기도 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에서 찾아온다. 아드레날린이 주는 기쁨과 환희는 사라지고 있지만, 세로토닌이 주는 행복에 젖어드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어 행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훈종, <논어로 여는 아침>, 한빛비즈, 1만68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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