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건강한 상태'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내가 주체가 되어 판단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결국 내가 주체적이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내가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을 산 것이 온전히 나의 판단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 옷을 사게 만든 외부적인 요인, 특히 마케팅과 미디어의 유행은 그 판단에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았을까? 불가능하다. 세상과 단절된 채 집에 베틀을 놓고, 혼자 베 짜는 것부터 옷 만드는 것까지 다 해내지 않는 이상 완전히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고집을 부리게 된다. 나는 주체적으로 판단 한 거라고.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고집이 결국 주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온전히 주체적인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만 어떠한 부분에서 그러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옷을 살 때는 의식적으로 그 부분을 재고할 수도 있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운동을 싫어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루틴을 짜는 이유는 각각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글을 쓰기 위한 루틴을 만들고, 누군가는 공부를 위해, 누군가는 일단 무엇이든 해 보고 싶어서란 이유도 있으리라. 목적이 무엇이든, 루틴을 짜고자 정한 이유가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것이 과연 건강한 루틴인지를. 일상을 '깎아 내는' 것이 아닌, 일상을 '다듬는' 루틴이기를 바라는 이유도 그것이다. 일상을 깎아 내다보면 결국 자기 자신도 깎여 나간다.
-범유진 외 6인, <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 &(앤드),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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