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국제사회에서 특정지역을 뜻하는 단어 중 가장 애매모호한 단어로 ‘중동(Middle East)’이란 단어가 있다. 글자 그대로 뜻만 보면 동쪽 여러 지역들 중에서 중앙에 위치한 곳이란 뜻이다. 이는 19세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릴 당시, 자국과 가까운 동쪽인 발칸반도와 동유럽 일대를 ‘근동’, 중국과 한반도,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은 ‘극동’이라 부르면서 그 중간에 있던 지역들을 중동이라 지칭해 만들어진 단어다.
원래는 영국군 내에서만 쓰던 이 단어를 국제적으로 만들어준 것은 미국의 해양전략가인 앨프레드 세이어 머핸 제독이었다. 그는 1902년, 당시 영국과 러시아가 발칸반도와 이란, 한반도에서 전 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 구도상에서 미국이 이들과 패권경쟁을 하며 생존력을 갖추려면 중앙에 놓인 페르시아만 일대, 즉 중동을 먼저 장악해야 하며 이를 위해 막강한 해군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대양해군 건설을 역설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육군과 해군을 합쳐 고작 3만명 정도에 불과했던 미국의 상황에서 그의 대양해군 건설 주장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의 주요 관심사는 서부 개척과 미 대륙횡단철도 건설이었고, 대양해군의 건설과 중동으로의 진출은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불과 10여년 후인 1914년, 1차대전 전후로 미국은 갑자기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그의 이론은 현실화된다. 특히 1차대전에서 해군력의 위력을 실감한 열강들은 이전보다 더욱 심한 건함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1차대전 직후에는 전 세계가 역사상 첫 번째 팬데믹인 스페인 독감을 겪으면서 미국을 주축으로 군축론이 일며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당시 해군 규모 5위권 내 열강들이 1936년까지 군축에 돌입하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일본이 이를 깨트리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무제한 건함 경쟁은 다시 시작된다.
이러한 역사를 겪은 미국은 오늘날에도 해군력 강화를 주창했던 머핸 제독의 주장을 ‘머핸주의(Mahanism)’라고 부르며 여전히 해양전략의 기초로 중시하고 있다. 중국의 계속되는 대양굴기에 맞서 전 세계에 걸친 막대한 해군력을 유지하는 데는 이러한 역사가 숨어 있는 셈이다.
19세기 이후 겪은 전 세계 패권분쟁에서 미국이 얻은 교훈은 동유럽과 중동, 동북아시아 등 이른바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국지적인 분쟁이 터질 수 있고, 이것이 거대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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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와 함께 중동 정세가 요동치는 것이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짐에도 동북아 각국이 군비를 줄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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