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정부가 입법예고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이 국회 제출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 제도의 모델이 된 미국에서 기업들이 1년에 10건 이상의 집단소송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3조원 가까운 관련 법률 비용을 지출하고 주가 하락 피해도 입고 있어 한국에서도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5일 미국 로펌 칼튼필즈가 매해 미국 매출 상위 1000대 기업의 준법담당자와 최고법률책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집단소송 현황 조사 '칼튼 클래스 서베이'를 바탕으로 집단소송법 제정안의 모델이 된 미국 집단소송제도의 기업 영향을 분석하고 한국 기업에게 미칠 파급영향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해 9월 증권분야에 한정됐던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확대하고 소송허가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전경련 분석 결과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연간 다루는 집단소송 건수는 2011년 4.4건에서 2019년 10.2건으로 2.3배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5.1건에 달할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기준으로 빈도가 높은 소송유형은 노동·고용 관련이 26.9%로 가장 많았고 소비자 사기(16.0%), 제조물책임(11.6%), 보험(10.7%), 독과점(9.0%), 기술법률위반(8.3%), 증권(7.7%) 순이었다.
미국 기업들의 집단소송 관련 법률 비용은 2014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2019년에 26억4000만달러(약 2조9000억원)로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전경련은 "미국 전체 소송시장 규모 약 227억5000만달러의 11.6%에 해당하고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공장 투자(26억달러), 신규 일자리(고용인원 2600명) 규모와 유사한 수준"이라면서 "비용 증가속도도 가팔라 2006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약 2.45%씩 증가했는데 이 추세면 2025년에 30억5000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서 제기된 집단소송의 결과를 살펴보면 2019년 진행된 집단소송 중 60.3%가 합의로 종결됐고 31.2%는 법원이 소송을 기각시키거나 아직 법원 계류 중이며, 나머지 8.5%는 재판 진행 상태다. 합의 비중은 2018년 73.1%에서 1년 새 12.8%포인트 감소한 반면 재판 중인 사건은 같은 기간 2%에서 8.5%로 증가해 합의 대신 소송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전경련은 집단소송 피소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기업들의 주가 피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1995~2014년 초 미국에서 제기된 집단소송은 총 4226건으로 이 중 합의에 의한 종결은 1456건, 합의액은 총 680억달러였다. 하지만 집단소송 피소가 알려지면서 이들 기업의 주가는 평균 4.4% 하락했고 이에 따른 주가 손실액은 합의액의 4배 가량인 총 262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조사대상 기업들은 집단소송 대응·전담 인력으로 사내변호사를 평균 4.2명 고용했는데, 이는 매출 약 51억9000만달러 당 1명을 고용하는 수준이라고 전경련은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면 한국에 집단소송이 도입될 경우 삼성전자 40.8명, 현대자동차 17.9명, LG전자 10.9명, SK하이닉스 5.5명, LG화학 5.2명의 추가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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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은 국내에서 집단소송법 제정안이 통과되면 미국보다 법적 리스크가 더 크게 늘어날 것이라면서 도입에 신중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 유환익 기업정책실장은 "21대 국회에서 기업 처벌을 강화하는 각종 법안들을 통과시켜 기업들의 부담이 큰데 집단소송까지 도입되면 기업들은 남소에 따른 직접비용 부담뿐만 아니라, 경영 불확실성 증대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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