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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걷는 속도, 우회전 신호, 엔진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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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민식이 법' 발효 이후 운전자만 지나치게 처벌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갑자기 아이들이 튀어나와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너무 억울하다는 요지다.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안전한 거리를 만드는 구조적 변화보다 처벌 강화라는 쉬운 길을 택한 국가의 대응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스쿨존'을 만들고 그 안에 눈에 띄는 색칠도 했고 시속 30㎞ 단속 카메라도 더 많이 설치했다. 그런데 '일을 안 했다'는 말을 듣는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운전자와 경찰 등 관계자 양쪽이 모두 억울하고 할 말이 많다.


그런데 '걷는 속도' 운전을 아시는가? 독일의 경우 주 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시속 5~7㎞ 정도를 걷는 속도 운전으로 정의하고 있다. 어린이 놀이터, 학교 주차장에서 교문, 주택가 등 아이들이 어디에선가 금방 튀어나올 수 있는 장소에는 걷는 속도 표지판이 흔히 있다. 기어 D 상태, 평지에서 가속 페달을 밟지 않고 자동차 엔진 힘으로만 가는 속도다. 걷는 속도 표지판을 보는 순간 속도를 완전히 줄인 후 발을 브레이크 위로 향한 채 언제든지 밟을 수 있는 상태로 주의 운전을 하면 된다. 그러면 누가 앞에 튀어 나와도 바로 정지가 가능하다. 시속 30㎞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민식이의 죽음은 시속 30㎞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30㎞ 신앙'을 버리고 걷는 속도로 믿음의 대상을 넓히는 시도를 권한다.


예산 문제인지, 인식 부족 문제인지 아니면 융통성을 워낙 좋아하는 한국 사회 성향인지 모르겠다.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우회전은 대부분 눈치껏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보행자는 녹색등이 켜지면 횡단보도 위에 나선다. 그 횡단보도를 지나는 우회전 차량은 주정차한 차들, 어둠, 나쁜 날씨, 운전자 부주의 등 여러 요인으로 사람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넓은 도로에선 옆 차로에 신호 대기 중인 차들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바로 앞으로 지나가는 보행자와 우회전할 때 맞부딪칠 수도 있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사회'에서 워낙 사람들이 주의하면서 길을 건너기 때문일까. 다행히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경우를 개인적으로 여러 번 목격했다. 스쿨존부터 우선 시작하면서 교차로마다 우회전 신호 체계를 '사람을 위해' 확대해야 한다.


[톺아보기] 걷는 속도, 우회전 신호, 엔진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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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어린이 안전을 '움직이는' 자동차만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리고 가는 부모와 가족, 출퇴근하는 교직원, 학원차 등등 모두가 학교 앞에 주정차하면서 시동을 끄지 않는다. 경유차의 엔진공회전이 티가 더 나긴 하지만 휘발유 차도 마찬가지다. 배기가스와 미세먼지가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 잠깐(?) 켜 놓은 거고 금방 출발할 건데 무슨 호들갑이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 잠깐이 대개 5~10분이다. 이 잠깐 사이에 자동차 배기관 뒤에 한 번 서 계셔 보시라. 밀폐된 공간에서는 배기가스에 20~30분 노출되어 있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민식이법' 발효 직후 안전 강조 차원에서 경찰차들이 등하교 시간에 학교 앞을 지킨 적이 있다. 역시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매일 출동 시간 내내 그걸 것 같았다. 그래서 학교 앞에서 아이들 건강 위협하지 말고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그냥 출발하는 경찰차도 경험했다. 엔진 공회전은 이미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더워서, 추워서, 그냥 습관적으로 켜 놓는 엔진이 한국을 '기후 악당'으로 만드는 기본적 요인이면서 동시에 아이들 (건강)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걷는 속도가 보편화되면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온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 우회전 신호가 많아질수록 나쁜 시야 때문에 아이를 보지 못했다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멈춘 차는 시동을 반드시 끄는 변화를 통해 내 아이의 건강을 부모가 오히려 위협하는 상황도 예방할 수 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진짜 안전한 사회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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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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