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해수면 상승과 농지의 사막화, 극심한 대기오염, 예측하기 힘든 기상이변, 언제 지구를 습격할지 모르는 운석 등 지구의 미래는 불안합니다. 지구가 황폐해져 생명이 살기 힘든 별이 되면,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생물은 인류입니다.
과학자들은 인류는 향후 100년 안에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멸종하는 원인도 망가진 지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의 이런 부정적인 전망 속에서 불안한 미래를 위해 인류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름 뜻있는 과학자들이 의견을 모아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아처럼 거대한 배를 만들어 우주로 피신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준비한 것은 바로 '유전자은행'입니다. 유전자은행에서 준비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식물의 종자와 동물의 체세포입니다. 식물의 종자를 저장하는 대표적인 곳은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입니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북극점에서 1300㎞ 가량 떨어진 노르웨이령 스발바르제도에 있는 국제적인 식물종자 저장 시설로 2008년 2월26일 공식 설립됐습니다. 3개의 지하 저장고는 1500만 종의 씨앗 표본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는데 현재 세계 각국에서 보낸 약 450만 종의 씨앗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해발 130m에 있는 영구 동토층의 바위산에 120m 깊이의 지하에 저장시설을 만들었습니다. 종자들은 영하 18도에서 밀폐된 봉투에 담겨 보관되는데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간 보관됩니다. 저장고는 지진이나 핵폭발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전기 공급이 끊겨도 일정 기간동안 자연 냉동상태가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추운 곳에 지어졌습니다.
저장고는 기후변화, 핵전쟁, 천재지변, 자연재해 등으로부터 주요 식물의 멸종을 막고, 유전자원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건설됐습니다.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 Global Crop Diversity Trust)'에서 기금을 출연해 북유럽 유전자 자원센터에서 관리·운영합니다.
국가나 단체가 종자 저장을 의뢰하면 무료로 저장해주고, 종자의 포장과 배송 비용만 부담하면 됩니다. 한국도 한국산 벼·보리·콩·땅콩·기장·옥수수 등 국내 작물의 씨앗 5000여종을 보낸 바 있습니다. 성서의 노아의 방주에 비유해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식물의 종자를 추운 북극권에 보관한다면, 동물의 체세포는 어디에서 보관할까요? 바로 동물원입니다. 모든 동물원에서 동물의 체세포를 보관하지는 않고, 세계 10곳의 '동결동물원'에서 주요 동물들의 체세포를 수집·보관합니다.
세계 최초의 동결동물원은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만들어졌는데 1976년부터 800종이 넘는 동물의 샘플 8400여개가 액체질소에 보관돼 있습니다. 이 샘플들은 무기한 보관되는데 종종 동물의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복제 등에 활용됩니다.
2008년에는 20년전에 보관된 족제비의 냉동 정자 샘플을 이용해 멸종 위기에 처한 검은발족제비의 개체수를 수백마리로 늘리기도 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토록 수많은 종자들과 많은 동물 종의 체세포 등을 냉동 보관한다고 나중에 모든 식물과 동물의 종을 복원시킬 수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북극의 산속에 있는 한 줌의 씨앗과 동물보호구역에 있는 코끼리 20마리만으로는 이미 망가진 생태계를 변화시키기 힘들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유전자은행이나 자연보호구역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동식물도 결국은 모두 죽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이 유전자은행에 동식물의 씨앗이나 체세포를 보관하는 것은 '최소한의 노력'입니다. 이 마저 하지 않으면 완전히 멸종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지요.
인류 최후의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됐고,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소장파 과학자들의 목소리에 보다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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