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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59] ‘아테네 학당’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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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59] ‘아테네 학당’ 앞에서 윤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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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치오 라파엘로(1483~1520).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의 3대 거장이지요. 성 베드로 성당 '서명의 방'에 그의 걸작이 벽화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아테네학당'.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유럽 르네상스 당대까지 역사적 인물 54명을 그린 집단 초상화입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프톨레마이오스, 미켈란젤로….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예술가들이 시공을 초월해 자유분방하게 늘어선 유럽 지성의 전당입니다.


인물화의 중심에 자리한 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라파엘로는 자신이 존경하던 당대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모습을 플라톤에 투영하지요. 벗겨진 머리, 긴 수염,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 표정…. 플라톤은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하늘로 향해 뻗은 자세입니다. 현실이 아닌 이상세계가 실재한다는 그의 철학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왼손에는 '형이상학'이라는 책을 들고 있지요. 그의 이데아는 감각을 초월한 형이상의 세계입니다. 벽화를 보면 라파엘로가 플라톤 철학의 특징을 훌륭하게 간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플라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는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지만 스승과는 생각이 다릅니다. 이데아는 초월적 실재가 아니라 인간 머릿속의 생각일 뿐이며 본질은 언제나 사물과 함께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입니다.


라파엘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이 땅바닥을 향해 있는 모습을 통해 '자세의 인문학'을 한 번 더 보여줍니다. '스승이시여, 허공에서 내려와 땅 위에 발을 디디셔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손에는 '윤리학' 책자가 들려 있습니다. 이로 보면 라파엘로에게 플라톤은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적인 윤리주의자인 셈입니다.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면 두 거장의 길은 종교와 예술의 갈림길이기도 하지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뿐 아니라 물리학, 생물학, 윤리학, 역사, 문학이론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탐구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야에 정통할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지요. 저처럼 문학을 하는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필수적으로 읽게 마련인데 이는 그리스 비극에 관한 최초의 정통 이론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비극론 외에 희극론을 시도했을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1)'은 이런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시도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론의 행방을 좇는 중세 수도원 내부의 이야기인데, 추리적 기법에 스릴과 서스펜스가 이어지는 명작입니다. 플라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국가에서 예술가를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술이 진짜(이데아)를 흉내 내는 가짜라는 이유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모방행위가 철학이나 역사보다 훨씬 보편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예술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입니다.


[윤재웅의 행인일기 59] ‘아테네 학당’ 앞에서

플라톤 철학이 유럽의 종교로 이어지는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아테네학당은 철학과 과학과 예술의 경연장이지만 바티칸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의 학교'이기도 합니다. 이 학교는 여러 신들이 복잡한 인과관계 속에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게다가 여기의 신들은 시샘하고 욕정을 일으키며 배신과 복수를 밥 먹듯이 하는 인간적인 신들이지요. 유일신 야훼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유대의 민족신화였던 그리스도교가 유럽에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게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야훼와 예수를 알기 전 유럽인들의 머릿속에 있던 이데아는 유대교의 신으로 대체가 가능합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물리적 사물들 너머에 올바름(眞)과 착함(善)과 아름다움(美)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요. 이데아의 퍼즐 조각을 빼고 거기에 창조주 하느님을 넣으면 부작용이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아테네학당은 단순화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 철학은 종교와 연관되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은 예술과 연결됩니다. 종교는 이상의 추구이며 예술은 현실 모방의 결과이지요. 삶은 깊숙하고 오묘하지만 단순하기도 합니다. 마음에 불만이 있으면 여기 바깥을 꿈꿉니다. 대표적 형태가 종교입니다. 지금 여기 내 몸의 감각을 표현하는 게 예술입니다.


우리의 삶 속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함께 살아가지요. '못 살겠다, 갈아 보자!' '이 시금치 사느니 저 콩나물 살 걸!' 역사적 사건부터 콩나물 사는 경험에 이르기까지 만족과 불만은 우리 안에 늘 살아 있습니다. 매순간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멀리 바티칸 성당의 아테네학당 앞에 와서 새로 생각합니다. 그대 안에 플라톤도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있습니다. 사람은 다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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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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