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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한국유사]경주를 침입한 동여진의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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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한국유사]경주를 침입한 동여진의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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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년 8월 동여진(東女眞)의 배 100여 척이 경주를 침입했다. 경주는 고려 3경(京)의 하나였다. 고려는 수도 개경(開京) 외에,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서경(西京)이라 하고, 옛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동경(東京)이라 하여 3경으로 삼았다. 동여진이 고려의 동경이었던 경주를 침입한 것이다.


동여진은 동해안을 따라 육로로 남하한 것이 아니라, 배를 타고 해로로 남하해 경주를 공격했다. 그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전하지 않는다. 고려는 동여진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청하, 흥해, 영일, 울주, 장기에 성을 쌓았다. 모두 경주 인근의 동해안을 방어할 수 있는 위치였다. 1012년 5월 동여진은 다시 경주 일대로 쳐들어 왔다. 청하, 영일, 장기 등을 공격했지만 이미 축성과 방어 태세가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경주로 진입할 수 없었다.

동여진의 경주 침입 후 7년이 흘렀다. 1019년 ‘도이(刀伊)의 적(賊)’이 쓰시마(對馬), 이키(壹岐), 치쿠젠(筑前), 히젠(肥前), 하카다(博多) 등 일본의 섬과 해안을 침입했다. 일본에서 말하는 ‘도이’는 동여진을 이르는 말이다. 동여진이 쓰시마 일대와 규슈(九州) 연해안을 습격한 것이다. 이때 동여진이 타고 온 배는 모두 50척이었다. 앞서 경주를 침입한 100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 동해안을 지나 일본까지 공격한 점에서 일본에게는 충격적이었다.


11세기 초 동여진이 습격한 일본 지역은 9세기 말 ‘신라 해적’이 습격한 지역과 일치한다. 당시 신라는 중앙 권력이 붕괴하고 후삼국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연이은 자연재해로 민심은 흉흉했고, 지방에서는 독립 세력들이 출현했다. ‘신라 해적’은 독자화를 선언하고 세력을 확장하던 견훤 집단과 연관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쓰시마와 규슈 북부지역에는 다량의 병력 유지용 물자가 매년 집적되고 있었다. 9세기 당시 치쿠젠, 치쿠고(筑後), 히젠, 히고(肥後), 부젠(豊前), 분고(豊後) 등에서 총 2,000석을 부담해 쓰시마로 운반했다고 한다. ‘신라 해적’은 이를 노리고 군수물자 확보를 위해 침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1세기 초 동여진도 이러한 맥락에서 쓰시마와 규슈 북부지역을 침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12세기 일본에서 편찬된 '조야군재(朝野群載)'에 따르면, 동여진의 배는 약 21.6m와 15~16m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큰 배는 50~60명이 승선하고, 작은 배는 20~30명이 승선한다고 되어 있다. 최대와 최소를 감안하여 어림잡으면 배 1척당 평균 40명이 승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일본을 습격한 50척에는 2,000명 정도가 승선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훈의 한국유사]경주를 침입한 동여진의 실체는? 여진인의 모습

후지와라 사네스케(藤原?資)가 쓴 일기인 '소우기(小右記)'에는 당시 일본의 피해 상황이 자세히 적혀 있다. 쓰시마에서 사망자 36명과 포로 346명이 발생했고, 이키에서 사망자 149명과 포로 239명이 발생했으며, 치쿠젠에서 사망자 180명, 포로 704명이 발생했다고 한다. 언급된 인명 피해만 1,654명에 달한다.


동여진이 일본을 침입한 시기는 1019년이다. 바로 전 해인 1018년에 여진의 고려 내조(來朝)가 급증했다.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1010년, 1011년, 1012년, 1017년에 각 1차례 내조가 있었지만, 1018년에는 매월 여진의 내조가 있었다. 동여진의 내조만 10차례였다. 보통 동여진이 고려에 내조할 때 특산품과 말 등을 헌상했는데, 1018년의 경우 특산품이 아니라 갑옷, 깃발, 병장기 등이 대부분이었다. 병장기를 헌상했다는 것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것을 고려에 헌상하며 무장해제했음을 암시한다. 동여진 내외부에 어떤 군사적 움직임이 있었고, 이를 피해 남쪽 고려로 내려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혼란한 과정에서 고려와 친밀하지 않았던 일부 세력이 해로를 통해 일본으로 침입했던 것이다.


1019년 동여진의 일본 습격을 전후하여, 특이한 사건이 발생했다. 동해의 우산국(울릉도)은 1018년, 1019년, 1022년에 동여진의 습격을 받았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일본을 습격한 동여진과 고려를 습격한 동여진은 동일한 집단이라 할 수 있다. 배 1척당 평균 40명이 승선했을 경우, 경주를 침입한 100척 규모의 인원은 무려 4,000명에 달한다. 이들을 어떤 국가의 일원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조직화된 거대 집단임에는 틀림없다.


'조야군재'에는 “산으로 오르고 들판을 가로지르며 소·말·개를 잡아먹으며, 노인과 아동은 모두 베어 죽이고, 젊은 남녀를 잡아서 배에서 실은 것이 400~500명이나 된다. 또한 도처에서 약탈한 곡식의 종류와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이들의 행동 자체를 보면 단순한 해적 집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표현에는 “칼을 번뜩이며 뛰어다니며, 활과 화살을 휴대하고 방패를 가진 자가 70~80명 정도, 서로 어울리는 무리가 이와 같다”고 되어 있다. 칼, 활, 방패를 휴대하고 70~80명 단위로 행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우기'에는 이들의 모습이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싸울 때는 각자 방패를 지닌다. 앞 열에 있는 자는 창을 들고, 다음 열에 있는 자는 큰 칼을 들며, 그 다음 열에 있는 자는 활과 화살을 든다. 화살의 길이는 1척 정도 되고, 쏘는 힘이 매우 맹렬하여 방패를 뚫고 사람을 맞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3열로 진(陣)을 구성했다. 1열은 창과 방패로 적의 기병과 활 공격을 막아내고, 2열은 큰 칼로 백병전을 대비하며, 3열은 활로 원거리 공격을 했다. 한 마디로 진법(陣法)을 구사하는 조직화된 집단이었던 것이다. 선박 수십 척을 이동 수단으로 운용한 점에서 단순한 해적 집단으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


여진은 단일한 종족이나 정치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숙신(肅愼), 진한시대 이후에는 읍루(?婁), 남북조시대에는 물길(勿吉), 수당시대에는 말갈(靺鞨), 송원시대 이후에는 여진(女眞)이라 불렸다. 이들은 부족과 부락 단위로 이합집산을 거듭했고, 각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변 세력과 온도차가 달랐다. 고려는 이들을 번(蕃), 말갈, 여진으로 혼용해 부르다가 점차 여진으로 불렀고, 위치에 따라 동여진과 서여진으로 구분했다. 동여진은 함경도에서 동만주 일대에 거주했다.


1009년 고려는 동북의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 과선(戈船) 75척을 지금의 원산 일대인 진명구(鎭溟口)에 배치했다. 과선은 대체로 과(戈)를 선체 아래나 위에 꽂아 적이 배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충각(衝角)을 설치하여 적선을 들이받을 수 있는 전선이라고 파악되고 있다. ?소우기?에는 배가 매우 넓고 크며 창과 갑주와 같은 다양한 무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큰 돌을 날려보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과선의 정확한 모습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고려의 주력 전선이었음은 분명하다.


1030년 4월 동여진의 만투(曼鬪) 등 60여 명이 고려로 와서 과선(戈船) 4척과 호시(?矢) 117,600개를 바쳤다. 동여진이 헌상한 과선이 고려의 과선과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비슷한 형태였기 때문에 과선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또 화살 약 12만개를 보유한 것으로 보아 전문 전투 집단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선 4척을 헌상한 이들은 1011년 경주를 침입한 집단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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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년 경주를 침입한 동여진의 거주지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본거지가 함경남도 함흥평야 일대, 두만강 하구 일대, 연해주 일대라는 설 등이 나와 있다. 다만 이들은 단순히 말 타고 약탈하는 해적 집단이 아니었다. 이들은 대규모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보유하고 있었고, 100척 이상의 대형 선박을 운용할 능력을 지녔으며, 진법을 구사할 수 있는 조직화된 집단이었다.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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