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두산백과)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보통 실없는 말을 하는 사람한테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한다"고 말한다. 이 속담은 과거 경상도 일대에서 제사상이 허술하면 조상신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광에 들어가 다 털지도 않은 씻나락, 즉 '볍씨'를 까먹는다 표현해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어이없고 엉뚱한 상황이란 뜻이다.
귀신도 배고프면 까먹을 정도로 볍씨가 과거 농경시대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소중한 식량자원이었는지 보여주는 속담이기도 하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흔히 벼는 한국에서도 자생하던 식물로 생각되기 쉽지만, 우리가 현재 먹는 동남아시아 원산의 자포니카(Japonica)종은 신석기시대 이후부터 들어온 외래식물로 알려져있다. 벼라는 단어 자체도 고대 인도 드라비다어로 벼를 뜻하는 '비야(Biya)'란 단어에서 왔다는 학설도 있다.
크기와 모양, 색깔이 다양한 쌀 품종(사진=농촌진흥청)
원래 벼과에 속하는 식물은 2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실제 재배되는 재배종은 2종류 뿐이다. 서아프리카 원산으로 알려진 '오리자 글라베리마(Oryza glaberrima)' 종과 동남아시아 원산의 '오리자 사티바(Oryza sativa)'종으로 나뉘며 오늘날에는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오리자 사티바 종을 키운다. 많은 물과 뜨거운 태양, 비옥한 토지를 근간으로 전통 농업에서는 단위면적당 소출이 서양의 밀에 비해 최대 10배까지 많았다. 이것은 엄청난 인구부양력으로 이어졌다.
해마다 망종을 전후로 모내기철이 시작되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제 모내기로 벼를 재배하는 이앙법(移秧法)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다. 이앙법으로 벼를 재배하려면 막대한 양의 물을 대기위해 대규모 수리시설 공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현대적인 수리시설 공법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이앙법이 크게 퍼지지 못했고, 직접 밭에 볍씨를 뿌려서 기르는 '직파법(直播法)'이 더 유행했다.
수리시설 설치와 모내기 등 막대한 노동력이 소모되는 이앙법은 조선후기부터 시작돼 전국적으로 퍼진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였다.(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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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직접 씨를 뿌려서 길러도 벼는 자랄 수 있으나, 어린 '모' 시절에 한국의 변덕스러운 봄날씨를 견디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갑작스런 냉해, 병충해는 물론 각종 잡초들의 공격에도 무방비로 노출된다. 논의 물은 이런 여러 문제로부터 어린 모를 보호하는 작용을 하며, 벼의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 다만 갑작스럽게 생육지가 뒤바뀌면서 적응기간이 늘어나 직파법에 비해 생육기간은 늘어난다고 한다.
이와 달리 야생벼(wild rice)의 경우엔 인도 및 동남아시아 일대 대부분 습지에서 잘 자라고 드물게 소금물에서 자라는 종도 있다고 한다. 낟알은 훨씬 작고 이삭도 쉽게 떨어지며 한해살이풀이 아니라 여러해살이풀로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러다보니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는 재배종 벼의 생육을 돕기 위해 논에서 자라나는 야생벼를 베어내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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