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의 프로파간다의 주무대는 라디오였다. 독일 나치의 선전 장관이자 히틀러에 이어 총리까지 지냈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국가 보조금까지 써 가며 라디오를 보급하고 매일 저녁 7시 '오늘의 목소리'라는 코너를 통해 대중들을 선동했다. 저녁이면 횃불행렬 실황을 전국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나치와 횃불, 라디오는 정교하게 짜여진 선동의 상징이 됐다.
라디오가 TV로, TV가 다시 인터넷으로 진화하며 프로파간다도 함께 진화했다. 최근 불거진 '드루킹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IT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뉴스의 팩트를 가리는 '팩트 체크'와 거짓 뉴스를 사실처럼 믿게 되는 '페이크 뉴스'의 폐혜는 이미 페이스북, 트위터 등 주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들이 한차례 홍역을 겪고 지나갔다.
국내의 경우 인터넷 포털이 그 역할을 한다. 영국의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지난해 3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는 77%의 뉴스 소비자들이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다른 국가들에 비해 크게 높은 수치다.
네이버 뉴스를 보는 일 평균 사용자는 1300만명에 달한다. 뉴스에 달리는 댓글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이유다. 주변의 뉴스 소비자, 심지어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지인들도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기 위해 포털 뉴스를 클릭한다. 뉴스 자체 보다 댓글의 향방이 더 큰 관심사다. 이렇다 보니 댓글을 통해 여론 조작도 가능해진다.
같은 뉴스에 어떤 정치 성향의 전문가 집단이 달라붙느냐에 따라 대중들의 방향도 결정된다. 과거와 다른점은 라디오, TV를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대신 노트북 앞에 앉아 매크로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소수의 해커들이 프로파간다의 주역이 됐다는 점이다.
과거 한 국제 시민단체가 '나쁜 기업'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투표를 실시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당시 '나쁜 기업'으로 선정됐는데 국내 몇몇 시민단체가 백방으로 해당 사이트의 링크를 보내며 '나쁜 기업'에 투표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결과 한국에서 몰표가 터졌다. 삼성전자가 그해 '나쁜 기업'으로 선정돼 곤역을 치렀다. 당시 해당 단체는 공공연하게 국내 활동가와 운동가들에게 링크를 보내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실시한 투표에서 공정성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읽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생각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한 두사람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괴벨스는 다음과 같은 명언도 남겼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 "여론조사는 대상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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