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스트 아워' 처칠役 개리 올드만
![[이종길의 영화읽기]'올드만'이라 쓰고 '처칠'이라 부른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8012413482969834_1516769310.jpg)
수상에 오르고 첫 하원연설까지 18일간의 갈등·고뇌 담은 이야기
특수분장 아티스트 가즈히로 직접 찾아가 작업 제안한 열정
촬영 때마다 3시간30분 걸쳐 분장...가발 위해 머리카락도 밀어버려
뚱뚱이 옷에 특유의 억양까지...완벽변신 올드만의 인생연기
1940년 영국은 불안에 떨었다. 나치가 무서운 속도로 유럽 대륙을 점령해나갔다. 많은 영국 의원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평화협상 제의를 지지했다. 로드 핼리팩스 외무장관도 협상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윈스턴 처칠은 모든 제안을 거부했다.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고 결사항전의 의지를 천명했다. "우리의 기나긴 역사가 끝장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땅에 쓰러져 자신의 피에 숨이 막혀 헐떡일 때일 겁니다. 나는 여기 모든 장관들이 항복하기보다 가족과 재산을 모두 없애고 차라리 죽음을 맞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서슬 퍼런 전의(戰意)는 영국 국민을 하나로 모았다. 국민들은 단합했다.
'다키스트 아워'는 처칠이 수상에 오르고 첫 하원연설을 하기까지 열여드레를 다룬 작품이다. 조 라이트 감독(46)은 파시즘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정치인의 리더십 이상을 주목한다. 조롱 받던 예순여섯 살 노인이 젊은이 못지않은 추진력으로 역사의 큰 별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룬다. 처칠은 수상에 오르기 전까지 의회에서 원로 취급을 받았다. 씀씀이가 헤퍼 경제적으로도 빚더미에 앉았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인생을 정리하는 나이에 새롭게 시작하고 성공했다. 이 모습은 처칠을 리더가 아닌 인간으로 다뤄야 제대로 그려질 수 있다. 라이트 감독은 대번에 개리 올드만(60)을 떠올렸다. "'시드와 낸시(1986년)', '귀를 기울여(1987년)' 등에서 그의 연기를 보며 열광했었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올드만'이라 쓰고 '처칠'이라 부른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8012413483269835_1516769312.jpg)
올드만은 그동안 실존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 시드와 낸시의 시드 비셔스, 'JFK(1991년)'의 리 하비 오스월드, '불멸의 연인(1994년)'의 루드비히 반 베토벤 등이다. 수년 전 처칠을 연기해 달라는 제의도 있었다. 그는 거절했다. 자신과 처칠의 체형이 다른데다 나이를 먹으면서 변하는 외형을 그릴 자신이 없었다. 그는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처칠이 보인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래야 그의 혼을 제대로 그릴 수 있다"고 했다. 다키스트 아워는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일을 다뤄 세월을 거스를 일이 없다. 올드만은 희망을 품고 일본의 특수분장 아티스트 가즈히로 츠지(49)를 찾아갔다. 영화계를 은퇴하고 극사실주의 현대조각에 매달린 그를 오래 설득했다. 가즈히로는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영화를 포기하겠다더라. 특수분장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해 수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올드만은 "가즈히로의 도움 없는 연기는 비행기에서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처칠은 168㎝의 작은 키에 비만했다. 어린 시절에 추락사고로 척추를 다쳐 몸을 곧게 세우지 못했다. 윗몸이 앞으로 굽어 구부정했다. 돌출한 턱은 고집 센 인상을 풍겨서, 따뜻하고 온유한 인물이 유리한 선거전에서 불리했다. 하지만 외모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정치가의 외모가 그 사람의 행동이나 신념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됐음을 인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즈히로는 올드만의 전신 주물을 다섯 차례 만들어 신체 비율과 두상의 차이를 보완했다. 주형(鑄型) 위에 처칠의 얼굴을 빚고, 그 위에 실리콘 고무를 발라 처칠을 재현했다. 올드만은 매 촬영마다 3시간30분에 걸쳐 분장했다. 새벽 3시에 촬영장에 도착해 뚱뚱이 옷으로 불리는 '폼바디 수트'를 입고 제작진을 기다렸다. 가발을 쓸 때 머리카락을 덮어야 하는 분장 팀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머리카락도 깨끗이 밀어버렸다. 그는 "그동안 촬영한 영화 가운데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올드만'이라 쓰고 '처칠'이라 부른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8012413481869830_1516769299.jpg)
올드만은 처칠을 상징하는 모자, 시가 등 액세서리도 직접 골랐다. 그가 쓴 모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자 상점인 락앤코의 상품이다. 양복도 처칠이 즐겨 입은 헨리 풀의 제품. 올드만은 "옷을 입으면서 역사의 한 순간으로 들어가는 듯했다"고 했다. 그가 왼손으로 태우는 시가는 쿠바산 코히바다. 처칠은 쿠바산 로미오 이 줄리에타를 즐겼다. 스무 살에 신참 군인으로 쿠바를 방문했을 때부터 하루에 스무 개피 이상 피웠다. 그는 술도 절제하지 못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니 워커 블랙을 마시다가 드워라는 독한 위스키로 바꿨다. 60대에도 매일 일곱 병을 마셨는데, 독특하게도 아침나절에 두 병을 비웠다.
올드만은 처칠과 달리 촬영하는 동안 욕망을 절제했다. 영화에서 처칠을 다루는 시간은 열여드레에 불과해도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심리와 생각을 이해하는데 공을 들였다. 처칠 전문 역사학자로 알려진 래리 안 힐즈데일대학교 총장으로부터 관련 서적을 추천받아 처칠의 음성이 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목소리는 점점 처칠을 닮아갔다. 집요하면서도 끈질긴 성격이 드러나야 한다는 생각에 연설 녹취를 휴대폰에 녹음하고 따라했다. 촬영장에서도 억양부터 방언까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는 "혀짤배기소리를 하는 게 독특했다. 편도가 조금 부은 듯한 목소리인데, 콧소리도 많이 냈다. 이 특징들을 어느 순간 어떻게 표현할지 미리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했다. 라이트 감독은 "흉내를 잘 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올드만이 말하는 방식이 처칠과 정확히 일치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지금 뜨는 뉴스
![[이종길의 영화읽기]'올드만'이라 쓰고 '처칠'이라 부른다](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8012413483669836_1516769317.jpg)
올드만은 처칠의 연설에 매료돼 다키스트 아워에 출연했다. 그는 "영어로 쓰인 위대한 산문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미사여구가 없고 이미지로 점철되지 않아 대단한 글로 다가왔다. 필요할 때 쓸 수도 있었겠지만, 처칠은 연설을 듣는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발화하는 말이 민중의 마음에 닿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연기는 라이트 감독이 처칠을 단순히 훌륭한 사람으로 그리지 않아서 전달력이 배가된다. 역사적인 인물이 유명해질수록 본연의 모습보다 대중이 생각하는 이미지로 굳어버리는 흐름에서 탈피했다. 올드만은 처칠의 연약하고 별나며 의심 많은 성격을 두루 보여준다. 자세하게 서술된 전기에도 잘 나오지 않는 얼굴이다. "처칠이 굉장히 강직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제는 매력적이지 않은 모습까지 받아들여야 할 때다. 그런 면에서 다키스트 아워는 새로운 역사 연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