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 미라가 된 사연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본관 건물에 앉아있다. 그가 살았던 18~19세기 얘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그곳에 있다.
이것은 벤담의 시신이다. 유골을 미라로 만들고 평소 그가 즐겨 입던 옷을 입혔다. 머리는 밀랍으로 조각해 얹었다. 벤담이 다소 오싹한 무덤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유언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시신을 이 대학에 기증한다는 유서를 썼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창한 벤담다운 죽음이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벤담의 미라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보가 있다. 1832년 세상을 떠난 그는 죽기 직전까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산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시신을 보존해 사상가가 될 후학들에게 자극을 주기로 했다. 자신의 시신 보존과 전시에 대해 엄격한 지시도 남겼다. 하지만 머리 부분은 방부 처리가 잘 되지 않아 밀랍으로 만들어졌다. 진짜 머리는 접시에 놓여 그의 두 발 사이에 놓였지만 학생들이 훔쳐가 자선기금을 내놓겠다는 대학의 약속을 받고 다시 돌려주는 사건을 겪은 뒤 지하에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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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벤담이 또 죽은 뒤에도 자신의 사상을 기리는 모임에 참석하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실제 1980년대 국제벤담학회 창설 모임에는 미라가 된 벤담이 휠체어를 타고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회의록에는 참석은 했지만 의사결정권은 없는 사람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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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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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의 무덤 수난사]④죽어도 살아있는 제러미 벤담](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17090811050275757_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