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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동반성장!]④납품단가 후려치기…혁신의 유인인가 공멸의 요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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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동반성장!]④납품단가 후려치기…혁신의 유인인가 공멸의 요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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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견적서'란 공급자가 주문자에게 제시하는 서류다. "이 정도 가격에 납품을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다. 그러나 의류부자재 생산업체 A사는 대기업에 납품하면서 이런 견적서를 만들어 본 일이 없다. 언제나 대기업이 견적서를 '내려보냈다'.


"사장님, 경기가 안 좋아 저희도 죽겠습니다. 납품가를 좀 내려주시면 안 될까요." 선박부품 생산업체 B사의 사장은 원청 대기업 구매 담당자로부터 이런 '애원'을 들었다. B사 사장에게 이 말은 정말 '애원'으로 들렸을까.

'납품단가 후려치기'라는 말만 나오면 중소기업 사장들의 목소리는 절로 높아진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원통해서 사업을 접든지" 판에 박힌 똑같은 탄식이 이어진다. 공통적인 게 하나 더 있다. "저희 회사 이름이 절대 (신문에) 나가면 안 됩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원자재 가격 상승 같은 외부 요인뿐 아니라 임금상승 등 원청기업의 비용 증가분을 하청업체에 전가하는 엄연한 불공정행위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16 중소제조업 하도급거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475개 기업 중 '지난 1년간 제조원가가 올랐다'고 한 중소기업은 52.0%였다. 그런데 같은 기간 '납품단가가 올랐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12.8%에 불과했다. 오히려 '하락했다'는 답도 15.6%나 나왔다. 또 중소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42.7%는 '현재 납품단가 수준이 적당하지 않다'고 답했다.

중기중앙회가 올해 실시한 '하도급거래 부당 단가결정 애로조사'를 보면, '부당한 납품단가 결정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한 업체는 14.3%였는데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이 수치가 올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대기업이 '작은 기업'에게 더 가혹하게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현실을 보여준다.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대기업은 일방적인 단가 인하보다는 공정한 방법을 통해 협력 업체와 함께 생산성을 올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동반성장!]④납품단가 후려치기…혁신의 유인인가 공멸의 요인인가


납품단가는 거래 당사자 간 '사적 계약'이며 시장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 대기업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생기면 중소기업 입장에선 다른 거래처를 찾거나 원가를 절감해 대응하는 게 맞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떨까.


같은 조사에서 '거래처가 납품단가를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중소기업의 58.1%는 '거래처(대기업)의 가격경쟁에 따른 원가인하 전가'를 꼽았다. 다음으로는 '경기불황'(14.0%), '업계관행'(11.6%), '생산성 향상을 이유로 원가인하'(9.3%) 등 순이었다. 대기업에게 비용절감 요인이 생기면 납품단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이를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게 문제다. 특히 중소기업이 '생산성을 개선했다'는 이유로 납품단가를 내리는 것은 중소기업의 혁신 성과를 대기업이 가로채는 것이라 죄질이 더 나쁘다.


대기업이 자체 부담까지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내부 문제를 거들떠 볼 리 없다. 최근 최저임금 상승이 대표적이다. 국내 굴지의 전자 대기업과 거래하는 C업체 대표는 "이번 인상률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논란이 큰 만큼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할 법한 사안 아니냐'는 질문에는 '가당치도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최근 경기상황을 운운하며 더 떨어뜨리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납품단가 인하 압박은 납품업체의 창의와 혁신을 유도하는 순기능이 있단 입장도 있다. 납품가격을 더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납품권을 따내는 '완전 경쟁'의 효율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효과가 영원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치킨게임'이란 말도 있듯 경쟁이 반복되면 효율성은 어느 수준부터 내려가기 시작하고 모두가 공멸하는 '경쟁의 역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상황은 시장의 자유 영역을 넘어 '정의'의 문제로 넘어가기 때문에 심판, 즉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ㆍ중소기업 간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는 동기 자체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에 혁신을 유인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기업이 기술을 지원하는 등 혁신이 이뤄지게 상생협력하면서 납품단가 인하 여력이 생기게끔 만들어주고 이후 성과를 나누며 윈-윈 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어 기대감을 심어준다. 지난 3월 하청업체 권익 보호를 위한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하청업체가 공정위 조사에 협조한 것을 이유로 대기업 등 원청업체가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금지된다. 그 동안은 원청업체가 거래 단절, 거래 물량 축소 등 보복행위를 하더라도 처벌하지 못했다.


중소기업계와 전문가들은 대중소기업 간 자율적 상생협약 유도 등 '동반성장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도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법ㆍ제도적 장치뿐 아니라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공정한 거래를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클 것이란 전망에서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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