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나푸티(투발루)=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기후변화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기후변화를 '거짓과 사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산호초 섬으로 이뤄져 있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을 한 번이라도 떠올려 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현실이고 그 파도는 거세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남태평의 작은 섬 투발루를 찾았다. 남태평양에서 보는 석양은 아름다웠다. 지난 4일 오후. 지구 전체에서 한 점에 불과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 투발루. 투발루 수도 푸나푸티에서 특별한 장면을 목격했다.
수평선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그 어떤 저녁노을보다 붉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석양빛이 그들을 실루엣으로 비췄다. 아이들은 모래 위를 뛰었다. 나뭇가지를 잡고 그네를 탔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몇 십 년 뒤에는 이 모습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다. 눈에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지금이 슬프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아이들의 웃음과 아름다운 석양 뒤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투발루는 크기가 26㎢에 불과하다. 인구는 1만 여명. 수도 푸나푸티에만 6000여명이 산다. 지구온난화의 거센 파도가 덮치고 있는 나라이다. 기후변화의 비극이 투발루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투발루의 평균 해발 고도는 2.2m. 가장 높은 곳이 5m이다. 화산섬이 아닌 산호초 섬이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계속 상승하면 도망갈 곳도 없다. 발을 딛고 있는 땅이 그대로 물에 잘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해수면 상승은 투발루 국민들에게 생존의 문제이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투발루 정부는 뉴질랜드에 새 터전을 만들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1만 명의 투발루 국민들이 모두 이주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어느 나라가 '기후난민'을 너그럽게 받아줄 것인가.
또 다른 남태평양 국가인 키리바시 국민 2000명은 이미 고향땅을 버렸다. 가까운 피지 북섬에 땅을 구입해 옮겼다.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운명에 처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들이다. 지구 온난화는 '거짓과 사기'가 아니다. 현실이다. 무차별적 개발과 산업화의 대가는 혹독하다. 이 문제가 다만 이들 가난한 나라만의 문제일까. '뭐 그럴 수도 있지' '땅이 잠기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되잖아'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릴 이슈일까.
더 이상 기후변화를 지켜만 볼 일이 아니다. 지구촌 전체가 나서야 한다. 투발루와 키리바시의 현재는 지구가 경고를 보내는 하나의 신호이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또 다른 큰 비극이 찾아올 지 모를 일이다.
후세대들이 아름답게 그들의 터전에서 살 수 있도록 준비해 주는 것.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유이다.
푸나푸티(투발루)=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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