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소액주주 운동이 활발해질 전망이다. 반면 취약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의 경우 외국계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으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높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기업과 주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9일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세부 과제 중 하나로 재벌 총수일가의 전횡을 방지하고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2018년까지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를 도입하고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겠다고 명시했다.
집중투표제란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새로 선임할 때 특정 이사 후보에게 표를 집중해 투표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로 가장 대표적인 소액주주 보호장치다. 가령 이사 3명을 뽑으면 1주당 3표를 행사할 수 있는데 3표는 각각의 이사에게 줄 수 있으며 한 명의 이사에게 몰아줄 수도 있다. 지분이 적은 소액주주도 얼마든지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사를 뽑아 기업 경영을 감시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1998년 말 상법을 개정해 기업이 주총의 특별결의로 배제하지 않는 한 이사의 선출을 집중투표방식으로 하도록 했다. 하지만 개별 기업이 정관에 '집중투표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 이를 시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동안 유명무실한 제도가 돼왔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기업 그룹 165개 상장사 중 단 8곳(4.9%)만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 이마저도 표면적으로만 내세우고 있을 뿐 아직 집중투표제를 통해 의결권이 행사된 경우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는 대부분 지분이 많은 오너 일가의 측근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수억원대의 높은 연봉을 받으며 오너 일가의 사익을 대변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안택식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는 "일반 주주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사외이사를 한 명 정도 선임할 수 있다면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정경유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집중투표제가 기업의 활동을 가로막아 경제를 위축시킬 것이란 비판도 있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PEF) 등 투기자본이 기업에 연구개발(R&D)을 줄이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토록 하는 등 단기적 몸값 상승을 위한 경영 활동만 요구하게 될 것이란 우려다.
집중투표제의 악용은 헤지펀드 칼 아이칸의 KT&G 먹튀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6년 칼아이칸은 타 헤지펀드와 연합해 KT&G 주식 6.59%를 매입했다. 칼아이칸은 당시 KT&G의 집중투표제를 악용해 헤지펀드 측 사외이사 1인을 이사회로 진출시켰다. 칼아이칸은 이후 KT&G에 부동산 매각과 자사주 소각, 회계장부 제출,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의 기업공개 등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약 2조8000억원의 비용을 투입했다. 칼아이칸은 그해 12월 주식매각 차익 1358억원과 배당금 124억원 등 총 1482억원의 차익을 내고 떠났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집중투표제는 기업 주총장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좋지 않은 제도"라며 "미국에서도 앞서 34개주가 이 제도를 실시했었지만 현재는 거의 다 없어졌고 일본 역시 1974년 이후 이 제도를 폐지했으며, 터키와 러시아 정도만 아직 실시하고 있는 수준이다"고 설명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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