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후 투자계획 시계제로…5개월 가까운 오너 부재, 중장기 미래전략 준비 차질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삼성전자가 최근 5년간 70조원이 넘는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애플과 인텔 실적을 뛰어넘는 토대를 마련했지만 2018년 이후 투자 계획은 사실상 '시계제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를 내다보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부재 상황이 5개월 가까이 이어지면서 중장기 전략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10일 "제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구조적인 개편이나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 등은 전문경영인 단위에서 결정하기 어렵다"면서 "2018년 이후 투자 계획이 사실상 제로(0) 상태"라고 말했다.
이는 대규모 투자 → 실적 상승으로 이어지는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 2~3년 뒤에는 '어닝 쇼크'를 피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2분기 60조원의 매출과 14조원의 영업이익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는데도 불구하고 삼성전자와 계열사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감지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3~5년 전 R&D와 기업구조 개편, M&A 등을 토대로 이뤄진 결과물"이라며 "지금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미래 성장 발판을 쌓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삼성은 최근 5년간 과감한 투자를 통해 애플과 인텔의 실적을 넘어서는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전자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2012~2016년 71조6000억원에 이르는 R&D 투자를 단행했다. 올해 1분기에도 3조8588억원을 투자했다. 2017년 투자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15조원 안팎의 R&D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6년 14조7923억원 ▲2015년 14조8488억원 ▲2014년 15조3255억원 ▲2013년 14조7804억원 ▲2012년 11조8924억원 등 연평균 14조32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유럽연합(EU)이 발표한 'R&D 스코어보드 2016'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25억2790만유로를 투자해 세계 2500개 기업 중 2위를 기록했다. 인텔은 111억3990만유로를 투자해 3위를 차지했고, 애플은 74억980만유로를 투자해 11위에 머물렀다.
삼성이 반도체 사업부문에서 최대 18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종합 반도체에서 부동의 1위로 평가받던 인텔(매출 추정치 16조4600억원)을 넘어서고, 전체 사업부문 영업이익 14조원으로 애플(영업이익 추정치 12조2000억원)을 넘어선 것도 오랜 기간 과감한 투자를 실행해 기술경쟁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런 삼성이 이제는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잡지 못하면서 미래 경쟁력을 우려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글로벌 기업들이 제4차 산업혁명 준비를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인텔은 이스라엘 자율주행 기업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에 인수했고, 아마존은 유기농 슈퍼마켓 업체인 홀푸즈를 137억달러에 사들였으나 삼성전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박사)은 "전문경영인은 과감한 투자에 따른 투자리스크를 감당하기보다 현재의 좋은 실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오너의 결단이 뒷받침돼야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지속적인투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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