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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미국의 독립기념일과 한국의 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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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미국의 독립기념일과 한국의 광복절 김은별 아시아경제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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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 김은별 특파원] 지난 4일은 미국의 241번째 독립기념일이었다. 미국인들에게 독립기념일은 국경일이라기보다는 축제에 가깝다. 독립기념일을 앞둔 주말부터 당일 밤까지 온 동네가 들썩인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Happy 4th"라고 인사를 건네고, 독립기념일에 무엇을 할 것인지 묻곤 한다. 마트에는 성조기를 구성하는 색깔인 빨강, 파랑, 흰색으로 디자인한 일회용 접시나 테이블보들이 깔리고 이 색깔을 활용한 컵케이크도 등장한다.


불꽃놀이도 빠질 수 없는 소재다. 미국 전역에서 1만6000여개의 불꽃놀이가 진행되며, 올해는 어디서 불꽃놀이를 볼 지가 최대 이슈다. 뉴욕, 워싱턴DC,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독립기념일과 인연이 깊은 동부 도시들은 불꽃놀이 규모를 놓고 매년 은근히 경쟁을 벌인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이 불꽃놀이에 쓴 비용은 8억달러 이상으로, 43.6%의 미국인이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보거나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술 소비도 상당하다. 지난해 독립기념일에 미국인들은 맥주에 10억달러, 와인은 6억달러를 지출했다.

특파원으로 부임해 처음 맞는 미 독립기념일.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국경일로 꼽히는 이날을 경험하기 위해 아침부터 뉴욕 인근 해변으로 향했다. 1시간 남짓 걸리는 지하철 내에는 해변용품을 잔뜩 챙긴 인파들로 들어차 축제 분위기였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걸인들조차도 "Happy 4th"를 외쳤다.


이곳에선 유명한 독립기념일 행사 '핫도그 많이 먹기 대회'가 열린다. 10분에 72개를 먹은 인물이 챔피언이 됐다. 독립기념일에만 미국에서 1억5000만개의 핫도그가 소비된다. 대회 시작 직전, 길거리에 몰린 수많은 인파가 동시에 미국 국가를 불렀다. 핫도그 많이 먹기 대회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대회 직전에 자부심 넘치는 모습으로 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자격지심인지 자존심인지, 미국 국가가 울릴 땐 괜히 딴청을 피웠고 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인상 깊었지만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문득,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 분위기의 독립기념일 행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아 플로리다로 휴가를 떠난다는 한 미국인이 내게 물었다. '한국도 인디펜던스 데이가 있느냐'고. 간만에 한국에 대해 설명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떼다 다음 질문을 듣고 웃어버렸다. '주로 어떤 색 옷을 입고 어떤 축제가 유명하냐'고.


한국의 광복절과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영어단어는 같지만, 의미는 매우 다르다. 한국은 원래 존재하던 대한제국이라는 주권국가를 일본이 힘으로 강탈했다 되찾았다. 독립도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며 얻었고, 동시에 남북이 분단됐기 때문에 한편으론 슬픈 날이다. 40년간 지배를 받았고, 독립운동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죽은 우리의 광복절이 미국의 독립기념일과 같을 순 없다.


그런 만큼 갑작스레 광복절을 축제 분위기로 바꾸자는 건 어불성설이다. 온 동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해 폭죽을 터뜨리고, 태극기 디자인의 옷을 너도나도 입고 거리로 나가는 일은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나긴 어렵다. 아직도 한국 정ㆍ재계 주요 요직에는 친일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결국 친일파들의 흔적이 청산되고, 독립에 기여한 이들의 후손이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 한국도 비로소 '축제 같은' 광복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새로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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