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전시장 2층 넓은 자리에 ‘교통체증(Traffic jam·2014)’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작품을 접한 관객은 그 즉시 주변을 한 바퀴 빙 돌게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작품은 시각적 만족감을 충족시킨다. 볼수록 매력 있다. 이외에도 전시장 전관부터 바깥까지 공간 성격에 맞게 조화롭게 배치한 입체 조각들이 시선을 끈다.
조각가인 이환권(43)은 개성 넘치는 독특한 작품으로 전 세계에 주목을 받는다. 경원대학교(現 가천대학교) 환경조각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2000년부터 개인전과 다수 그룹전에 참가했다. 세계 미술시장이 주목하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2006년)에서 ‘복사집 아들내미 딸내미(2004~2006)’는 추정가에 열 배를 넘기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8년 10월 서울옥션 경매에선 당시 1억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며 컬렉터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올해는 제 28회 김세중 청년조각상을 수상해 오는 24일 시상식(용산구 ‘예술의 기쁨’ 대강당)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그의 작품 키워드는 ‘왜곡’이다. 작품은 온전한 것이 없다. 길쭉하거나 납작하게 찌그러지거나 왜곡된 인물상 일색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져 재미있다. 이환권 작가는 우연한 호기심으로 왜곡된 입체 조각을 시작했다.
이 작가는 “지금은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하지만, 70~80년대 TV속 인물은 상하로 길게 늘인 홀쭉한 모습이었다. 와이드 스크린으로 제작된 영화를 상영할 때는 좌우가 잘려 방영되는 등 왜곡이 심했다. 당시에는 좁은 TV화면으로 모든 것을 봐야했다. 2D화면이지만, 그 안에서 3D를 느끼게 되면서 그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고 했다.
왜곡은 그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작가는 자유롭게 변형된 이미지를 다시 조각으로 만들어 현실 공간으로 끄집어낸다. 관람자는 다소 어지러움을 느낀다.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마치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 작가는 “모든 방향과 시점을 중요시하고 관찰하고 싶었다. 처음 보게 되면 먼저 눈을 의심하게 된다. 흥미롭고 충격적이지만, 관람객은 좀 더 그곳에 머물게 된다. 일종의 착시라고 할 수 있는데 머리속 지각과 상식이 깨지니 어지럽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소재는 늘 주변에서 찾는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왜곡되지만 아름답게 표현한다. ‘통일(2017)’ ‘버스정류장(2005)’ 등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공감’과 ‘만남’ 역시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교통체증’은 샐러리맨이던 친구의 고단한 모습을 담은 것이다.
그의 조각 작품은 세밀하게 신경 써야할 부분이 많다. 조각하려는 모델을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이용해 상하 좌우 방향으로 자유롭게 늘린다. 변형된 이미지는 다시 3차원의 입체 조각으로 변환해 흙으로 빚고, 합성수지인 폴리에스테르로 주물을 떠낸다. 그는 “초기 작업은 ‘버스정류장’ ‘장독대(2008)’ 같은 것들인데 왜곡된 모습을 그대로 만든다. ‘통일’의 경우, 관찰만으로 만들기 어렵다. 3D스캐닝을 적극 차용하고 있다”고 했다.
작가는 도시 환경 안에서 조각이 가질 수 있는 역할과 그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번에도 전시장을 충분히 활용했다. 그는 “어디에 전시하든, 특히 조각은 공간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같은 작품이라 해도 공간에 어떻게 전시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항상 전시할 때마다 신경쓰는 부분”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신사동 예화랑에서 문을 연 개인전 ‘예기치 않은 만남’은 내달 15일까지 열린다. 미공개 신작 10여점도 선보인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