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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공화국] 능력보다 '식스펙'이 우선? 좋은 일자리 창출이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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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공화국] 능력보다 '식스펙'이 우선? 좋은 일자리 창출이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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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대한민국 사회를 둘러싼 다층의 벽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좌-우로 나뉜 이념 갈등부터 세대갈등, 성별차별 까지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의 구조는 복잡해지고 대립은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 사회의 통합을 가로막고,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고(故) 노무현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관통하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모토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한걸음에 도달할 수 없다. 정부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함께 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하고, 갈등의 고리를 풀려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아시아경제신문은 창간 29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의 벽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모색해 본다.

[스펙공화국] 능력보다 '식스펙'이 우선? 좋은 일자리 창출이 답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한 영화사에서 일하는 고졸 출신 영상엔지니어 임모(34)씨는 자신의 취업을 '행운'이라고 여긴다. 가장 기본 '스펙'인 대학 졸업장과 영어 성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상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임 씨는 운이 좋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대학교 4학년인 이모(26)씨는 지난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취준생 대열에 뛰어들었다. 면접에서 아쉽게 떨어진 경우도 있었고 한 곳은 최종합격까지 했다. 하지만 더 좋은, 원하는 회사에 도전하기 위해 포기했다. 취업 '전적'은 5전1승4패지만 이 씨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소위 'SKY'로 불리는 명문대 공대 출신에 어학연수경험과 영어 점수, 동아리 활동 등 모든 '스펙'을 갖춘 자신의 탈락을 단지 '운'이 없었다고 믿었다.


우리 사회는 스펙사회가 된 지 오래다. 학벌, 학점, 외국어점수, 인턴, 공모전 수상, 어학연수 등 취업을 위한 '식스펙(6가지 스펙)'을 갖추지 못한다면 패배한다는 것은 취준생들에게 황금률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달 7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86.1%가 기업의 채용 절차에서 학력 차별이 '심각할 정도로 존재한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인성, 일에 대한 열정, 전공분야에 대한 지식 등을 채용의 우선 조건이라고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청년들은 드물다. 임씨와 같이 착실하게 자신의 분야에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이들마저 '스펙'이 가장 우선이라고 믿는다.


◆ 1인당 '스펙' 비용 4300만원=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대졸자들이 스펙을 만들기 위해 들인 비용은 평균적으로 1인당 4269만원이었다. 또, 대다수 취준생들이 목표로 하는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회적 기회비용은 연간 25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모습을 야구장의 관객들에 비유했다. 채 선임연구위원은 "야구장에서 맨 앞의 관객이 일어서면 잘 안 보이는 뒷사람들도 모두 일어서지만 경기 결과도 관객의 시야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취준생들의 스펙 경쟁도 이처럼 어떠한 사회적 효용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스펙에 따른 차등은 인정했지만 모든 스펙을 가려보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100곳의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한국의 청년 채용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졸업 시점), 학점, 전공, 출신대학 등이 가장 중요한 4대 스펙으로 꼽혔다. 이 중 하나라도 평균 이하라면 다른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회복이 안 된다는 분석이다.


이 네 가지 스펙은 대학 입학부터 일정부분 결정된다. 취업을 준비할 시기에 반짝 노력을 집중한다고 해도 바뀌기 힘들기 때문에 일면 '신분'과도 비슷한 성질을 가졌다. 채 선임연구원이 야구장의 관객에 비유한 이유다.


◆ 취업은 끝? 삶으로 이어지는 격차=취업을 해도 학력, 스펙 차별은 끝나지 않는다. '스펙공화국'에선 스펙 격차가 임금 격차로 그대로 이어진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비교 통계에 따르면 대졸자는 고졸자 보다 평균 37%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OECD국가 평균 57%보다는 작지만 이는 학력에 따른 차별이 선진국 평균 이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노동시장 전반에 자리 잡은 생산직의 연공서열형 임금체계가 있다. 중장년 생산직 중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생산직을 시작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의 혜택을 누린 노동자가 많다는 의미다. 실제 고용부에 따르면 1년 미만 근속자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수준이 3.3배에 달해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었다.


고졸 인구 자체가 준 것도 원인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2016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대학진학률은 69.8%로 OECD국가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대졸 사무직 노동자들이 조기 명예퇴직 등으로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의 덕을 보지 못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스펙공화국'의 학벌사회, 깨기 위해선…=스펙 경쟁은 초등학생 단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천재교육이 지난해 전국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5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 자녀가 자격증 시험을 본 적이 있다'는 답변은 62%로 절반을 웃돌았다. '앞으로 자녀의 자격증 준비·응시 계획이 있다'는 대답은 무려 82%였다. 자격증과 같은 스펙은 대학 입시와 직결되고, 학벌은 취업 등에서 다시 스펙으로 작용한다. 청년들에게 스펙경쟁은 한 번 탈락하면 다시 넘기 어려운 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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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선임연구원은 스펙 경쟁의 해소가 좋은 일자리의 확충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지원자들을 판단할 명확한 평가지표가 없어 여러 가지 관련 스펙을 보며 성실성, 인성 등 추상적 지표를 측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대기업이라는 제한된 '좋은 일자리'를 두고 다수의 청년들이 경쟁해야 하는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는 "공시생(공무원시험준비생)이 늘어나는 것도 '스펙'을 안 볼 뿐 아니라 안정적인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라며 "문 대통령의 첫 업무 지시가 일자리위원회 설치일 정도로 새 정부에서도 일자리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는 만큼, 대기업뿐만 아니라 여러 중소기업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 청년층의 일자리 사다리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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