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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러시 티켓'과 'J노믹스'



[아시아경제 오상도 정치부 차장]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극장가에는 '러시(Rush)' 티켓이란 생소한 제도가 있다. 고가의 뮤지컬 티켓이 부담스러운 학생이나 서민을 위해 공연 직전 선착순으로 10~20장의 입장권을 싸게 파는 것을 일컫는다.


알뜰족이 되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수다. 공연장 앞에 길게 늘어서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손에 쥔 입장권은 정상가의 3분의 1수준이다. 이쯤 되면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는 고통쯤은 가벼운 추억이 될 만하다.

흥미로운 건 러시 티켓으로 입장한 관객들의 반응이다. 염치 있기로 유명한 미국인이지만, 공연 중간 휴식시간을 틈타 앞 열의 비어있는 값비싼 로열석으로 자리를 옮기곤 한다는 것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고급 상품을 소비하려는 소비심리와 잇닿아있다.


그런데 한 대형 공연장은 일부러 이들을 제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비록 싼 값에 입장한 관객이라도 비싼 관람석의 가치를 체득한 뒤에는 언젠가 로열석의 관객이 돼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러시 티켓은 이제 관객과 공연장이 윈윈(Win-Win)하는 공생마케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를 국내 일자리 정책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지만 닮은꼴을 찾을 수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화두가 된 'J노믹스'가 이 중 하나다. 소득 주도 성장론에 기반한 이 경제정책은, 가처분소득을 높여 소비와 내수를 늘리고 이를 국가 경제의 동력으로 삼자는 움직임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비판도 만만찮다. '무차별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조짐을 필두로 최저임금 인상, 대기업의 갑질 금지 등이 자칫 기업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포퓰리즘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그러나 간과한 대목도 있다.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어나 '건강한' 일자리를 경험한 사람만이 제대로 된 일터의 가치를 깨닫고, 소득 양극화를 해소하는 첨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은 복합적이다. '아베노믹스'를 앞세웠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늘날 일자리 창출과 임금 인상을 위해 기업을 압박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9년 전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뉴질랜드의 첫 여성총리(1997~1999년)이자 개혁 전도사였던 제니 시플리와 독대한 자리에서 "복지, 노동, 교육은 따로 가는 게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 복지정책의 변화가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가져올 것"이란 값진 조언을 들었다.


이명박정부 출범 직후 '일하는 복지'의 벤치마킹 모델을 찾기 위한 자리였는데, '작은 정부'와 '민간을 활용한 복지체계 구축'이란 답이 제시됐다. 그는 "'재정 지원자'(정부)와 '서비스 제공자'(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시플리는 총리 시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두 차례 경제회복 방안을 논의하며 'DJ노믹스'에도 영향을 끼쳤다.


정권이 몇 차례 바뀌어도 굴러갈 수 있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해법은 다양하고 이를 풀어낼 답지는 형태만 다를 뿐이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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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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